광주FC와 수원 블루윙스의 2011 K리그 2라운드 원정길! 오랜만에 단관 버스 두 대가 떴다. 정말 너무나도 오랜만이다. 요새는 '구름 위를 걷는다'는 말이 왜 과장이 아닌 표현인지 몸소 체험하는 중이다. 이래서 진정한 우리팀은 다른가보다. 작년 K리그 마지막 성남 원정 경기 때 단 세 명의 인원만이 승용차로 원정길에 올랐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로 꿈과 같은 일이다.주말인데다가 유난히 그날 따라 고속도로에서 접촉사고가 많이 일어났고, 심지어 기름을 운반하는 차까지 사고가 나는 바람에 기름 제거작업 때문에 두 시간 가량을 고속도로에서 허비했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상전벽해가 따로 없다. 게다가 승용차라서 버스전용차로를 사용할 수도 없었다. 결국 그 날 세 명의 서포터가 경기장에 도착한 시각은 후반 42분 무렵이었다. 탄천구장 매표소의 직원들이 우리를 측은하게 바라보았던 그 눈길, 그리고 짧은 시간동안 이나마 목이 터져라 '광주'를 외쳤던 그 모습을 필자는 아직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참으로 힘들고 서러운 원정이었지만 그래도 그 경기만큼 기억에 남는 원정경기도 흔치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이번 경기는 버스를 타고 가니 그러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아무래도 버스 전용차로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은 아직까지 나에게 엄청난 '특권'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물론 세 명의 인원이 떠났던 원정에 비하면 훨씬 많은 인원들이 참가하는 바람에 인원을 관리하는데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모두가 질서정연하게 움직였고, 인원을 관리하는 서포터 회장 이하 운영진의 진행력도 탁월했다. 지루하기만 했던 원정길은 많은 사람들이 각각 자기소개를 하고, 응원곡을 배우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쉬는 토요일이라 그런지 상당수의 중.고등학생들도 눈에 띄었다.
어쨌거나 그렇게 수원 월드컵 경기장에 도착했다. 빅버드에는 광주FC 서울/수도권 지지자 모임 '노스크루 주작'이 미리와서 준비하고 있었다. 광주에서 올라간 인원과 합치니 인원수가 상당했다. 노란 옷을 입은 신생팀 서포터들의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수원 시민들의 눈길이 있었지만 이마저도 싫지만은 않았다.
경기 전 광주FC 서포터스 '빛고을'의 모습
필자는 작년 여름 대한민국과 나이지리아의 A매치를 보기위해 빅버드를 찾았던 경험이 있다. 일년도 채 지나지 않은, 빅버드 방문이지만 그 당시의 심정과 지금의 심정은 차원이 다르다. 마치 이번 원정은 우리 모두가 '승리자'가 되어 개선문을 통과하며 빅버드에 입성한 느낌이다. 모든 지지자들은 빅버드로 입장하면서 '광주 지지자가 왔다네' 라는 노래를 불렀다.
다른 팀들에 비해서 광주는 수원과 꽤나 사이가 좋은 팀이다. 흔히 '형제구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래서 더욱 설렜다. 작년 그들이 한 시즌 내내 경기장에 걸었던 플래카드를 우리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모두가 그렇게 바랐던 시민구단 창단이 현실이 되어 이렇게 빅버드에서 다시 만났다. '욕망의 불똥'보다 '소름끼치게' 멋진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광주FC 서포터스 '빛고을' 역시 이러한 각 팀 서포터스들의 관심과 사랑을 잊지 않고 노란 플래카드로 화답했다.
작년 시즌 내내 수원 서포터스 '그랑블루'가 달았던 플래카드
광주FC 서포터스 '빛고을'의 플래카드
참 훈훈한 모습이다. 그라운드 내에서는 마치 맹수처럼 사납게 달려드는 선수들이지만 경기가 끝나고 나면 서로 기분좋게 악수하고 격려해주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모습이 그라운드 밖 서포터들에게까지 그대로 이어지는 것 같아서 감동적이었다.
경기 전 수원 블루윙스 서포터스 '그랑블루'의 모습
경기 전 빅 버드의 관중석 모습
항상 '축구수도'라고 자부하는 수원. 그 명성답게 경기시작 한참 전부터 위의 사진과 같은 응원준비를 하고 있었다. 충분히 '축구수도'라고 할만한 자격이 있다고 본다. 이제 첫걸음을 뗀 우리 광주FC도 꾸준히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여 가까운 시일내에 저들보다 더 멋진 모습을 보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3시가 되자 드디어 경기가 시작되었다. K리그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아니, 축구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면, 오늘 경기의 무게중심이 아무래도 수원쪽으로 쏠리는 것을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객관적인 선수들의 실력과 이름 값, 구단의 재정, 홈 경기의 이점 등 그들은 '골리앗'이라고 불릴 수 밖에 없는 팀이었다. 우리 '다윗' 광주FC가 '골리앗'에게 해볼만 한 것은 단지 젊음과 패기 뿐이었다.
광주FC와 수원 블루윙스의 선발 출장 명단. 수원의 멤버는 말 그대로 국대급이다.
하지만 경기가 시작된 지 25초만에 골리앗은 다윗에게 돌팔매질을 당한다. 소위 '정신 못 차리고 한 대 얻어맞은 꼴'이었다. 그리고 전반 내내 골리앗의 그로기 상태는 지속되었다. 수원의 캡틴 최성국 선수는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현란한 개인기로 광주 선수들을 공략했지만, 우리 선수들의 조직력은 그리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염기훈, 오장은, 이용래, 오범석 등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즐비한 수원을 상대로, 객관적인 전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우리 선수들의 투혼은 대단했다.
특히 베테랑 박호진 선수의 모습은 그 가운데에서도 군계일학이었다. 입이 쩍쩍 벌어질 정도의 '미친 선방'을 수차례 보여줬다. 박호진 선수가 상무시절 광주에서 뛰었을 당시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이러한 모습을 이해할 수 있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왜 이런 선수가 이제까지 국가대표에 발탁되지 못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미 충분히 검증된 국대급 선수이다. 단지 그가 사람들의 기억에 없는 것은 지독히도, 정말 지독히도 운이 따라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늦게나마 그의 이러한 불운도 광주FC로의 이적을 통하여 마침표를 찍었다고 본다. 팬의 입장에서는 몸을 사리지 않는 투혼을 통해 광주 시민들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준 박호진 선수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아마 수원팬들 역시 오랜시간 함께했던 박호진 선수의 이러한 모습을 보며 흐뭇해 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박호진 선수의 슈퍼세이브와 김동섭 선수의 돌팔매질 골로 우리 선수들은 전반 내내 '레알 수원'을 완벽하게 압도해버리고, 후반을 맞이한다. 후반도 시작은 나름대로 괜찮았다. 상대 선수의 발에 차이고, 밟히고, 넘어져도 우리선수들의 집념은 대단했다. 결코 국가대표 선수들의 모습에 뒤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았다. 우리 선수들의 유니폼에도 국가대표 선수들의 유니폼에 적힌 '투혼'을 새겨주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후반으로 갈 수록 수원의 공격은 매서워졌고, 마침내 골 넣는 수비수 '통곡의 벽' 마토는 그림같은 프리킥에 이어 페널티킥까지 성공시키며 결국 경기는 2:1로 마무리 되었다. 심판의 석연찮은 판정이 무척이나 아쉬웠지만, 부상의 위험을 무릅쓰고 온 몸을 던지며 헌신했던 우리 선수들의 모습에 박수를 보냈다. 수원 입장에서는 홈 개막전에서 만만한 신생구단을 만나 홈 팬들에게 막강한 화력에 바탕을 둔 화끈한 골 퍼레이드를 보여줄 생각이었겠지만, 그들의 바람은 결코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죽다 살아난' 꼴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수원이 못했다기 보다는 확실히 광주가 잘 한 경기였다. 시즌 개막전만 하더라도 최약체로 평가받던 광주FC는 개막전에서 비록 약체지만 대구FC를 펠레 스코어로 잡았다. 또한 올 시즌 가장 유력한 우승후보인 수원을 홈에서 저토록 쩔쩔 매게 만들어버렸다. 이제 우리 광주FC를 '승점 자판기'정도로 생각하는 각 구단들은 생각을 바꿔야 할 것이다. '상무'와 '광주FC'는 질적으로 다른 팀이고, 선수들의 정신상태와 시민들의 관심도부터 전혀 다른 팀이기 때문이다.
물론 광주FC는 다른 구단에 비해서 선수층이 상대적으로 얇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선수 대부분이 신인급 선수로 구성되어있어서 경험면에서도 아직은 매우 부족하다. 하지만 산전수전 다 겪어본 우리팀의 최만희 감독이라면 이마저도 현명하게 헤쳐나갈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엄청난 잠재력을 바탕으로 나날이 성장해가는 우리 선수들의 모습이 이와 더해진다면 광주는 분명히 큰 사고를 칠 수 있는 팀이 될 것이다. 광주FC가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이 더욱 더 기대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빅버드 관중석에 걸렸던 현수막
한편, 빅버드의 관중석 한 구석에는 이러한 현수막이 걸렸다. 경기 하루 전 날 일본에서 일어난 지진과 관련한 메시지였다. 비록 상대팀이지만 이러한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폭풍 감동'을 느낄 수 밖에 없게 하였다. 이러한 부분은 우리도 배워야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스포츠를 스포츠 자체만으로 보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말도 일리가 있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말도 일리가 있지만, 결코 스포츠를 스포츠로만 보자는 사람들의 시각에서는 이러한 아이디어가 나올 수 없다고 본다. 그들은 스포츠를 스포츠로만 보기 때문에 자기 선수들을 응원하는 문구, 그나마 조금 더 발전한다면 자기 고장을 응원하는 문구밖에 새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생각해보면 스포츠를 스포츠로만 보는 사람들은 과거에 '무늬만 광주'를 달고 존재했던 상무마저도 별 거부감 없이 응원했다. 결국 그 덕분에 2009 시즌 '봉사 문고리 잡기'로 상무가 반짝 돌풍을 일으킬 당시 족보도 없는 희귀한 '상무'서포터스가 탄생했던 것이다.
과연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쪽팔려서' 본인이 그 모임의 일원이었다는 것을 대놓고 밝히지는 못하겠지만, 어딘가에서 분명히 광주FC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아니, 그들이 진정으로 '상무'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면 상주로 '팬 연고지 이전'을 했을지도 모를일이다. 그러나 상주 상무 홈페이지 메인화면에 '서포터스 모집'이라는 배너가 뜨는 걸 보면 아직 그들은 상주로 '팬 연고지 이전'을 하지는 않은 것 같다. 필자는 진심으로 그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너무나도 궁금하다. 아마도 과거에 광주에서 반짝 활동했던 '상무 서포터스 찾기'는 초등학교 시절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윌리를 찾아라'보다도 어려울 것 같다.
경기 후에는 원정 서포터스와 구단 직원들이 함께 식사를 했다. 이 자리에는 그랑블루 김일두 회장이 직접 자리해서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광주와 수원은 심심하면 형제 구단이라는 소리를 하는데, 왜 그러한 말이 나오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자기팀의 개막전 승리에 심취해서 다른팀에 대해서 별 관심을 갖지 않을 법도 한데 직접 찾아와 이렇게 인사를 하는 것을 보면서 앞서 현수막을 보며 느꼈던 '폭풍 감동'을 한 번 더 느낄 수 있었다. 서포터스간에 이러한 분위기를 바탕으로 더욱 더 발전적인 응원 문화를 꾀하고 이러한 것들이 하나가 되어 K리그와 대한민국 축구가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랑블루 회장 김일두씨
광주로 돌아오는 길. 패배의 아쉬움과 육체적인 피곤함이 더해졌지만 마음만은 참 따뜻했다. 그리고 벌써부터 다음 경기가 기다려진다. 다음 경기는 16일 강원FC와의 평일 원정경기다. 우리 선수들은 점점 더 발전해가고, 팬들은 더욱 더 그들을 성원해주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 경기결과는 진 경기였지만 결코 진 것 같지 않았던 뿌듯한 수원원정이었다.
-광주FC 명예기자 박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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