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FC와 수원시청의 FA컵 첫 경기. 가난한 시민구단인 신생팀 광주FC에게 그나마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대회는 리그도 리그컵도 아닌 FA컵이다. 대학팀과 실업팀이 한꺼번에 참가하는 대회인데다가 녹다운제이기 때문에 충분히 약팀도 어느 정도의 운이 따라준다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정규리그에서 1위부터 3위까지만 주어지는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FA컵 우승팀은 동일하게 획득할 수 있다. 광주입장에서는 굉장히 솔깃한 대회임에 틀림없다. 필자 역시 광주의 리그 성적에는 별로 신경쓰지 않지만 FA컵만큼은 솔직히 기대를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경기는 굉장히 실망스러운 경기였다. FA컵에 대한 기대가 컸던 것도 있지만, 전반적인 경기내용과 선수들의 정신력이 분명히 기대 이하였다. 사실 광주FC가 수원시청에게 패배한 것은 이변이 아니다. 내셔널 리그가 일반 팬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감이 있지만, 결코 K리그가 무시해 버릴만한 수준은 아니다. 또한 광주FC는 올해 창단된 신생팀이고, 선수들의 대부분은 신인급이다. 반면 수원시청은 내셔널리그 전통의 강호이고 상대적으로 광주FC에 비해서는 경험있는 선수들이 포진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광주FC가 수원시청에 패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은 없다.
결국 광주FC는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FA컵을 위해 전력투구를 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수비진의 이용과 박병주, 허재원 선수를 제외하면 나름대로 베스트 멤버를 가동했다. 하지만 경기 내내 광주는 제대로 된 플레이를 하지 못했다. 그러나 정작 필자가 이 경기를 보면서 가장 화가 났던 이유는 우리 선수들이 상대팀을 한 수 아래로 보고 경기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리그나 컵대회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상황이 이날 경기에서는 여러 차례 연출되었다. 특히 우리 미드필더진은 상대선수와 1:1의 상황에서 쓸데없는 잡기술을 여러 번 시도했다. 분명히 정규리그나 컵대회에서는 패스로 이어갔을 상황인데, 이 날 경기에서는 동일한 상황에서 쓸데없는 개인기를 부렸다. 그 개인기 역시 공을 치고 돌파하려는 과감한 플레이가 아니라 인터넷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축구 묘기에 가까울 정도의 쓸데없는 시도들이 대부분이었다. 광주팬의 입장에서도 이런 생각이 들 정도인데, 상대팀 수원시청의 선수들은 어떻게 느꼈을까? 불난집에 기름붓는 격이 아니었나 싶다.
사실 상대팀이 우리보다 한참 아래의 실력을 가진 선수들이라면 그러한 기술을 사용하든 말든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 참 재수없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그런식의 플레이를 하면서라도 승리를 따낸다면 크게 문제되지 않기 때문이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활약하는 호날두나 바르셀로나의 메시가 그런 잡기술을 사용하여 상대팀을 농락하고 그러한 것들을 통해서 승리를 쟁취할 때 그들을 향해 박수갈채를 보내는 사람은 많을지 모르지만, 그들을 비난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리고 그들은 그러한 잡기술을 써도 될 만큼 상대팀에 비해 월등한 기량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광주FC는 수원시청을 그런식으로 대할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물론 이날 경기에서 광주FC는 시종일관 수원시청을 압도했다. 하지만 결정적인 상황을 번번이 놓치면서 득점 찬스를 고스란히 날려버렸다. 결국 전반전은 0:0 무승부로 끝났다. 이런 경기일수록 선제골은 중요한데 광주는 선제골을 넣지 못했다. 후반 역시 비슷했다. 오히려 후반 3분 수원시청의 박종찬에게 선제골을 허용한다. 다급해진 광주는 이승기 선수를 투입했고, 다행히 얼마되지 않아서 유종현 선수가 동점골을 성공시켰다. 그리고 이후에 광주는 안성남, 김동섭, 김수범까지 투입하며 수원시청의 골문을 두드렸지만, 수원시청은 탁월한 정신력과 투혼을 바탕으로 광주의 창을 막아냈다. 결국 연장후반 페널티킥을 허용한 광주FC는 1:2로 분패하고 말았다.
온 몸을 날리며 팀에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준 안성남 선수
전반에 자주 볼 수 있었던 우리 선수들의 잡기술은 후반전 이후에는 거의 볼 수 없었고, 오히려 후반부터는 상대팀의 수비에 막혀서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더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나마 후반에 안성남 선수가 투입되면서 신인급 선수들에게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 덕분에 우리 선수들은 전반전의 잘못된 모습을 조금이나마 고칠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안성남 선수가 몸을 날리는 모범적인 모습을 여러 차례 보여줬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광주는 전반전부터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물론 경기내용에 관한 이야기는 별로 할 필요가 없다. 광주FC가 수원시청을 압도했으면 했지, 절대 압도당하지는 않았으니까.
결국 앞에서 말했듯이 정신력의 문제다. 이제 갓 프로에 들어온 우리 선수들이 깔볼 수 있는 팀은 거의 없다고 보는게 옳다. 그나마 K리그나 N리그의 다른 팀에서 경험을 쌓은 선수들은 예외이다. 그런데 분명히 이 날 경기에서 상대팀을 깔보는 듯한 플레이를 한 선수들은 모두 신인이었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야한다고 안성남 선수나 박호진 선수는 상대방을 깔보는 듯한 플레이 대신에 오히려 더 큰 투혼을 보여줬다. 그나마 우리팀의 어린 선수들 중에서는 임하람 선수가 시종일관 몸을 사리지 않고 열심히 뛰어줬다. 불행 중 다행이다. 우리팀의 신인 선수들은 이 점을 확실히 알고 똑바로 반성해야한다. 그들의 이러한 플레이는 상대팀에 대한 실례인 동시에, 우리 팀 팬들에 대한 실례이기도 하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라는 속담이 있지만, 우리 팀은 결코 아직 원숭이가 아니다. 우리 선수들은 그 점을 확실히 알았으면 한다.
반대로 수원시청은 객관적인 전력에서 우리 선수들에게 밀렸음에도 불구하고 꿋꿋한 정신력을 바탕으로 승리를 일구어냈다. 이날 경기는 5.18 민주화 운동 기념일이라서 서포터의 응원이 없었다. 덕분에 선수들의 고함소리를 경기장에서 쉽게 들을 수 있었는데, 확실히 우리 선수들의 목소리보다는 수원시청 선수들의 목소리가 더 컸다. 그만큼 그들은 파이팅 넘치는 팀플레이를 했고, 이기고자 하는 욕망도 대단히 강했다. 그들의 그러한 마음은 상대팀을 응원하는 필자같은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전달되었다. 결국 광주는 질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경기 막판 수원시청이 얻은 PK에 대한 오심 논란도 있을 수 있다. 광주 팬으로서 필자도 그 점이 굉장히 안타깝다. 하지만 심판 탓을 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안일한 정신상태로 경기에 임한 우리 선수들을 탓하고 싶다. 우리 선수들이 평소처럼 적극적인 모습으로 경기에 나섰더라면 분명히 연장까지 가지 않고 이길 수 있었던 경기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 선수들은 이 경기의 패배를 절대 잊지 말고 마음속에 간직해서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골 찬스를 놓치며 아까워하는 김동섭 선수. 그나마 김동섭 선수가 교체 투입되어 공격에 숨통이 트였다.
어쨌거나 제대로 된 정신력의 부재와 소극적인 경기운영, 불운이 겹치면서 광주FC는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진출이라는 큰 꿈을 첫 경기만에 접어야만 했다. 그리고 내년FA컵을 위해서는 1년을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이것 외에도 광주는 잃은 것이 많다. 나름대로 주말에 열리는 인천과의 리그 경기를 위해서 주전 선수들의 휴식을 염두에 둔 것 같은데, 경기가 예상대로 풀리지 않아서 안성남 선수, 김동섭 선수, 이승기 선수, 김수범 선수를 투입시켰다. 게다가 경기가 연장으로 이어지는 바람에 이 선수들은 예상보다 장시간 경기를 뛰고 말았다. 특히 캡틴 박기동 선수와 이 날 골을 기록한 유종현 선수, 김은선 선수, 정우인 선수, 박 현 선수 등은 풀타임 출장했다. 광주로서는 굉장히 아쉬운 부분이다. 당장 인천과의 일요일 경기가 걱정된다.
광주 입장에서는 FA컵도 탈락하고 선수들의 체력 안배에도 실패했으며, 당장 이어지는 주말 인천과의 리그경기에도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선수들의 정신력 문제가 이렇게 엄청난 결과를 야기했다. 우리 선수들이 일요일까지 얼마나 빠르게 체력을 회복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인천전 승부의 향방은 우리 선수들의 체력 회복에 따라 좌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디 우리 선수들이 오늘의 실패를 교훈 삼아서 앞으로 더욱 더 새롭게 변화하는 선수, 더욱 더 새롭게 발전하는 광주FC가 되었으면 한다.
-광주FC 서포터 정시내(사진), 광주FC 명예기자 박양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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