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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FC/2011

승부에 쐐기를 박은 주장의 현명한 선택

  전남과의 2011 K리그 28라운드 경기! 전남은 올 시즌 광주에게 그다지 달갑지는 않은 상대였다. 첫 대결인 리그 컵에서 0:2로 패배를 당했고, 두 번째 경기인 리그 경기에서는 0:0으로 비겼다. 두 경기 모두 광주가 충분히 이길 수 있었던 경기 내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큼 불운이 겹쳐서 승리를 낚아채지 못했다. 광주가 최근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 것은 바로 이런 부분 때문이었다. 게다가 전남은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을 위하여 사력을 다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광주는 이미 6강 플레이오프 진출과 멀어져서 잃을 것이 없는 팀이다. 덕분에 마음을 비우고 부담 없이 한 경기 한 경기 팬들을 위해 즐거운 경기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부분들이 긍정적으로 작용해서 시즌 막판 리그 판도를 바꿀 정도로 때늦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성남과 부산, 울산, 그리고 대구가 그 돌풍에 사라져 갔다.

  이 날 광주는 김동섭의 빈 자리에 임선영이 들어온 것 빼고는 거의 베스트 멤버를 모두 가동했다. 교체 멤버중에는 정우인, 박현, 안성남이 눈에 띄었다. 네 선수 모두 지난 대구전에서 맹활약을 보여주며 광주에게 귀한 승점 3점을 선물한 선수들이다.

  전남 역시 베스트 멤버를 가동시키며 시즌 막판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을 위한 불타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그러한 전남의 의지는 경기 초반부터 돋보이기 시작했다. 전남은 전반 시작과 동시에 매우 공격적인 모습을 보였는데, 특히 오른쪽 측면 돌파를 여러 차례 시도하던 웨슬리의 움직임이 눈에 띄었다. 웨슬리는 나름대로 위협적인 모습들을 보여주었는데, 아쉽게도 그 때마다 박병주라는 견고한 벽에 가로막혀 제대로 된 공격을 하지 못했다.

 

 

  경기가 시작한 지 채 몇 분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박병주와 웨슬리의 충돌이 일어났다. 광주 팬의 입장에서는 전혀 문제될만한 부분이 아니었는데, 웨슬리는 굉장히 과민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박병주는 팀 내 고참급 선수답게 그러한 상황을 웃으며 넘겼다. 하지만 이후에도 웨슬리는 여러 차례 박병주에게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였다. 박병주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러한 웨슬리의 태도를 보고 맞받아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여우였다. 웨슬리의 그런 감정상태를 역이용하는 듯 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결국 웨슬리는 전반 10분만에 ‘여우’ 박병주에게 말리기 시작하면서 옐로 카드를 받고 말았다.

 

 

  이후 웨슬리의 움직임은 눈에 띄게 소극적으로 변하고 말았다. 게다가 광주는 허재원까지 가세하여 박병주의 수비부담을 줄여주었다. 결국 웨슬리는 슈팅 한 번 제대로 날리지 못한 채 하프타임에 교체되었다. 이 날 광주는 두 골을 넣으며 2:0의 깔끔한 승리를 거두었는데, 필자는 이 날 광주 승리의 일등 공신이 박병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웨슬리가 감정조절에 실패하면서 전남의 창은 확실히 무뎌졌다. 물론 광주 역시 크게 위협적인 상황을 만들지는 못했다. 두 팀 모두 전반전 내내 3개씩의 슈팅밖에 하지 못했고, 그 가운데 전남은 한 개의 슈팅만을 유효슈팅으로 연결시켰다. 반면 광주는 단 한 개의 유효슈팅도 기록하지 못했다. 약간은 지루했던 경기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광주가 질 것 같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던 전반전이었다.

 

 

  그러나 후반전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특급 용병 주앙 파울로가 들어오면서 광주의 공격력은 급상승했다. 임선영의 빈 자리를 채운 주앙 파울로는 특유의 빠른 발과 개인기를 이용하여 전남의 골문을 노렸다. 그는 교체되어 들어온 지 10분여 만에 환상적인 골을 성공시키며 광주에게 선제골을 안겨주었다. 허재원의 패스를 받은 김은선은 주앙 파울로를 보며 자로 잰 듯한 패스를 날렸고, 그 패스는 주앙 파울로의 발 앞에 제대로 떨어졌다. 상대팀의 수비수가 주앙 파울로를 따라가 봤지만, 그는 어느새 각 없는 오른쪽 측면에서 환상적인 슈팅을 날리며 전남의 골문을 흔들었다. 김은선의 환상적인 패스도, 그 패스를 받아 각도 나오지 않는 위치에서 골로 연결시킨 주앙 파울로도 칭찬 받아야 마땅할 환상적인 장면이었다. 김은선 이 어시스트를 통해 올 시즌 첫 공격포인트를 기록했다.

 

 

  이 골을 시작으로 광주는 제대로 기가 살기 시작했다. 골에 앞서 들어온 정우인과 이후에 들어온 안성남 역시 지난 경기의 활약을 이 경기에서도 이어가며 전남을 위협했다. 축구경기의 교체 카드가 단 세 장이라는 점은 필자에게 굉장히 아쉽게 느껴졌다. 지난 경기에서 놀라운 활약을 보였던 안성남, 정우인, 임선영, 박현 가운데 임선영은 선발로 출장했지만, 나머지 세 명 가운데 두 명만이 교체카드로 경기에 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교체 카드를 뺏은 선수가 이 날 멋진 선제골을 뽑은 주앙 파울로였기 때문에 그나마 아쉬움은 줄어들었다. 하지만 박현의 활약을 보고 싶었던 필자의 아쉬움을 완벽하게 숨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튼 주앙 파울로의 골 이후 광주는 파상공세를 이어갔다. 광주의 플레이만 놓고 본다면 그들은 한 골을 뒤지고 있는 팀 같았다. 주장 박기동은 탁월한 볼 키핑력을 바탕으로 여러 차례 상대 골문을 위협했고, 그의 옆에는 주앙 파울로가 붙어 다니며 전남 수비진을 귀찮게 만들었다. 허재원의 측면 공격도 굉장히 위력적이었고, 적재 적소에 패스를 뿌려주는 박희성 역시 언제나 그렇듯 만점 활약을 보여주었다. 광주의 에이스 이승기 역시 안성남과 교체되기 직전까지 무난한 활약을 보이며 강력한 신인왕 후보의 모습을 보였다. 웨슬리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이리저리 요리해버린 박병주를 비롯하여 유종현, 이용의 수비라인 역시 굳건했다.

  하지만 광주는 후반 막판까지 골을 성공시키지 못했다. 오히려 후반 막판으로 갈수록 약이 오를 대로 오른 전남이 마지막 발악을 했다. 전남은 6강 플레이오프를 향한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광주의 골문을 위협했다. 때문에 비록 한 골 차이로 리드를 하고 있었지만, 광주는 안심할 수 없었다. 그러나 결국 전남의 마지막 발악에 종지부를 찍는 동시에, 전남의 발악을 보던 광주팬들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골이 터지고야 말았다.

  비록 이 골이 본인의 공격 포인트와 연결되지는 못했지만, 이 골에 가장 기여한 선수는 누가 봐도 김은선이었다. 후반 막판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쉬운 타이밍이었지만, 김은선의 볼에 대한 집중력은 대단했고, 결국 그의 집중력은 골로 연결되었다. 그는 후반 막판까지 상대 선수에 대한 압박을 계속했는데, 그의 압박 때문에 전남의 이현승은 볼을 뒤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의 패스는 느린 속도로 안재준을 향했고, 김은선은 이를 놓치지 않고 바람처럼 달리며 안재준과 몸싸움을 벌였다. 결국 안재준은 제대로 볼을 처리하지 못했고, 이 상황을 놓칠리 없는 캡틴 박기동은 볼을 안전하게 낚아채며 골문을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그는 이운재와 1:1로 맞서게 되었다.

 

 

  이 상황이라면 누구나 골 욕심을 노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개발의 수준을 넘어서 닭발의 경지에 오른 필자라고 하더라도 주저하지 않고 슈팅을 날렸을 것이다. 불안하지만 1:0의 리드를 지키고 있는 상황, 그러나 후반 추가시간만을 남겨놓은 상황에서, 주전 공격수가 1:1의 찬스를 팀을 위해 희생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캡틴’ 박기동은 자신의 골보다 팀의 승리를 택했다. 물론, 그 상황에서 박기동이 차분하게 슈팅을 했다고 하더라도 골문을 벗어날 가능성은 굉장히 낮았다. 하지만 그러한 일말의 가능성마저 없애버리기 위해 박기동은 자신의 주위를 살폈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겠다는 그의 깊은 마음이 엿보였다. 그의 왼쪽으로는 안성남이 전력을 다해 쇄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박기동은 동료 안성남을 믿고 패스를 주었고, 안성남은 손쉽게 전남의 골문을 열었다. 그제서야 필자는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전남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굴욕적인 순간이었겠지만, 광주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아름다운 골을 보기도 힘들 노릇이었다. 박기동의 양보하는 모습은 광주의 올 시즌 그 어느 골보다도 아름다웠다.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주전 스트라이커임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골 수가 적었던 박기동, 하지만 그는 자신의 골보다 팀을 먼저 생각했고, 그의 현명한 선택 때문에 광주는 기분좋은 2:0의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광주의 두 번째 골이 터지자 전남은 경기를 포기해버리고 말았다. 그 누가 나타나도 아마 그러했을 것이다. 박기동 그는 정녕 대인배였다.

  이 날 경기 박기동의 평점은 6.5점이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높은 평점을 받은 선수는 박호진과 안성남, 주앙 파울로가 있었다. 하지만 박기동은 이들을 제치고 이 날 경기의 MOM에 선정되었다. 팀을 위해 희생하는 그의 모습은 평점 그 이상의 것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박기동은 이번 라운드 베스트 일레븐에도 선정되면서 개막전 이후 두 번째로 라운드 베스트 일레븐에 뽑히기도 하였다. 팀을 위해서나 개인을 위해서나 팬들을 위해서나 그의 선택은 최선이었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박기동의 현명한 선택으로 골을 성공한 안성남은 박기동에게 크게 쏴야 할 것이다.

  여담이지만 이 날 광양전용구장에는 국가대표의 조광래 감독이 왔다. 누구를 보러왔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광주의 이승기와 전남의 이현승을 보러왔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조광래 감독은 두 번째 실점의 결정적인 빌미를 제공한 이현승보다 광주의 에이스 이승기, 그리고 올 시즌 초반 국가대표에 발탁했던 박기동의 플레이를 더 높게 평가했을 것이다. 조광래 감독의 눈이 정상이라면 누가 보아도 그러했을 것이다.

 

 

  수원에서 이운재라는 큰 벽에 가려져 제대로 된 출장기회를 보장받지 못했던 박호진 역시 이 날 경기에서 이운재에게 통쾌한 승리를 거뒀다. 두 번째 골을 막기 위해 골문 앞에서 어쩔줄 몰라하며 굴욕적인 움직임을 보였던 이운재로서는 이래저래 기억하기 싫은 경기가 되고 말았다. 반면 박호진으로서는 대리만족을 얻을 수 있었던 장면이었다. 필자의 생각이 너무 악랄한가? 하지만 필자는 그렇게 믿고 싶다.

  아무튼 광주는 적진에서 귀한 승점 3점을 추가하며 시즌 9승째를 챙겼고, 무패기록 역시 다섯 경기로 늘렸다. 반면 광주에게 제대로 얻어터진 전남은 6강 플레이오프 진출에 빨간불이 켜졌다. 남은 두 경기가 리그 1,2위를 다투는 전북과 포항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전남은 울상을 지을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돌풍을 일으키는 팀들의 공통점은 시즌 초반 반짝 하다가 시즌 중반을 지나면서 하락세를 보이고, 시즌 막판에는 성적이 수직 낙하한다는 것이다. 김명중과 고슬기, 최성국이 미친 활약을 보였던 2009년의 광주상무가 그랬고, 김정우를 앞세워 시즌 초반 반짝 1위를 지켰던 올 시즌의 상주상무가 그랬다. 또한 강원FC의 첫 시즌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광주는 시간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모든 선수들과 팬의 가슴속에 깊게 자리잡은 올 시즌의 개막전이 있지만, 광주는 이후에 개막전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광주의 경기력이 크게 곤두박질 친 것은 아니었으나, 이상하게도 고비 때마다 무너지는 모습을 보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시련을 겪으면서 광주는 점점 더 강해졌고, 시즌 막판으로 가면서 더욱 더 큰 힘을 내고 있다. 광주가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강해지는 것은 굉장히 긍정적인 부분이다. 광주 선수단의 대부분이 신인급 선수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광주의 내년, 그리고 내후년 시즌이 더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렇게 꾸준히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내년부터 시작되는 강등제는 광주와는 먼 나라의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제 다음경기는 올 시즌 광주의 마지막 홈경기인 수원과의 경기다. 수원은 그제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 알 사드의 비매너 행위로 난투극을 벌이고 몸과 마음에 크나큰 상처를 입었다. 광주와의 경기에 어떤 선수들이 나올지 예상하기 힘들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그들의 사정이지 광주가 그들의 사정을 봐줄 필요는 없다. 광주는 주위 상황에 신경쓰지 않고 광주다운 경기를 보여주면 되는 것이다. 이번 경기가 끝나면 내년 시즌 개막까지 홈에서는 광주FC의 정식 경기를 볼 수 없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우리 선수들을 위해 광주 시민들이 경기장을 가득 채워야 하는 이유다. 광주의 마지막 홈경기, 경기장을 찾아서 다 같이 광주를 응원해보자.

 

-광주FC 서포터 정시내(사진), 광주FC 명예기자 박양태(글)-

 

 

평점 및 경기기록 (출처 : 한국프로축구연맹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