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축구는 이름값으로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리고 우리 선수들은 그것을 이 경기에서 확실하게 증명해 주었다. 어찌보면 '듣보잡'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할만큼 알려지지 않은 우리 신인 선수들이 짬밥과 네임밸류로으로 확실하게 무장한 상주 선수들을 완벽하게 압도해버린 경기였다. 상주 선수들은 시종일관 우리 선수들과 심판에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우리 선수들은 전혀 거기에 말려들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 선수들의 거친 플레이와 압박에 베테랑 상주 선수들이 말려버린 경기였다. 팬들의 입장에서는 은근히 쌤통이었다.
우선 이 경기는 2011년 광주FC의 경기중에 가장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다. 이제까지 광주FC는 항상 상대팀에게 중원을 장악당해 공격다운 공격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수비에만 치중했고, 그러는 가운데 체력 고갈의 문제점을 드러내며 후반에 실점을 했다. 그래서 나름대로 철벽방어를 하고 괜찮은 경기력을 보여줬지만 매번 패배하고 말았다. 수비적인 경기 운영을 하다보니, 아무래도 공격의 기회가 별로 없어서 골도 잘 터지지 않았다. 몇 번 안되는 찬스를 살려야하는 공격수의 입장에서는 더욱 더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 날 경기는 달랐다. 돌아온 '광주의 아들' 이승기의 활약이 단연 돋보였다. 지난 수요일 부산과의 원정 컵대회 경기에서 프로 첫 데뷔전을 치렀지만 아쉬운 근육 경련으로 후반 교체되었던 이승기. 나름대로 부산전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줬지만, 그의 교체 후 막판 실점으로 광주는 패배하고 말았다. 하지만 분명히 그의 중원 장악능력은 탁월했다. 그래서 필자는 희망을 볼 수 있었다. 그랬던 이승기가 이번 상주전에서는 단단히 벼르고 나온 것 같았다. 체력적인 문제를 걱정했지만 그것은 필자의 완벽한 기우에 불과했다. 사방을 휘젓고 다니면서 중원을 완벽하게 장악했다. 그의 발에서 수많은 공격이 시작되었다. 결정적인 골 찬스를 놓치기는 했지만 역시 이승기는 이승기였다. 덕분에 주위의 선수들까지 여러번의 슈팅을 날렸다. 상주의 입장에서는 간담이 서늘했을 것이다.
수비수들의 활약은 이승기의 그것보다 더욱 더 탁월했다. 아무래도 다른 경기에 비해서 공격이 많아지니 수비 부담이 적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은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활발한 오버래핑으로 공격에도 뛰어들었다. 특히 김은선 선수의 중거리 슛은 압권이었다. 또한 우리 선수들은 몸싸움에서도 상주 선수들을 완벽히 압도해 버렸다. 마치 2002년 월드컵 대한민국과 포르투갈의 경기와 흡사했다. 물론 광주FC는 대한민국이고, 상주 상무는 포르투갈이다. 우리 선수들은 상대선수보다 한 발 더 뛰고, 조금 더 적극적인 몸싸움을 벌였다. 번번이 우리 선수들의 수비에 막혀서 제대로 된 공격을 해보지 못해 당황한 김정우 선수의 표정을 보면서 2002년의 루이스 피구가 오버랩 되었다. 덕분에 올 시즌 어느팀도 막지 못했던 김정우 선수의 연속 골 기록을 자랑스런 우리 광주FC가 마감시켜줬다.
미드필더진과 수비진에 비해서는 부족했지만 박기동, 김동섭의 공격라인도 그런대로 괜찮았다. 김동섭 선수는 부산전에서 당한 허리 부상이 아직 완쾌되지 않은 듯 약간은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보였지만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상대팀에게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또한 무리한 개인기보다는 팀 플레이 위주의 경기를 했기 때문에 크게 티가 나지도 않았다. 박기동 선수는 이제까지 보여주지 않았던 화려한 발재간을 보여주었다. 그 큰 키에 빠른 스피드를 보여주는 것도 신기한데, 페널티 에어리어 안쪽에서 상대 수비수를 상대로 여러번의 개인기를 보여줬다. 또한, 선배 선수들의 수비에 전혀 주눅들지 않았다. 솔직히 팬의 입장에서는 상주 선수들이 '탈탈 털리는' 모습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 분명히 아쉬운 점도 있었다. 11개의 슈팅 중에 6개의 유효 슈팅. 그 중에 단 한골도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은 못내 아쉽다. 한 골만 일찍 들어갔더라면 충분히 분위기를 이어받아 대량 득점에도 성공할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박기동, 김동섭, 안성남 등의 선수들에게 굳이 채찍질을 가하자면 골대 앞에서 조금만 더 침착하고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골을 넣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좀 더 자유로워져야 한다. 조금 더 편한 마음가짐에서 골 찬스를 맞이하게 된다면 아무래도 더 많은 득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부디 우리 선수들이 심리적인 면에서 좀 더 안정될 수 있었으면 한다.
광주FC의 든든한 맏형이자 정신적 지주, 박호진 선수
마지막으로 우리 선수들의 정신적인 지주인 박호진 선수에 대한 이야기다. 솔직히 우리팀 선수중에서 올 시즌 가장 기복없는 플레이를 보여준 선수는 박호진 선수다.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박호진 선수는 실력에 비해 과소평가되어있는 대표적인 선수 중 하나이다. 지독히도 운이 없어서 이운재라는 그늘에 가려져 빛을 보지 못했지만 그는 엄연히 리그 정상급 골키퍼이다. 단지 지독한 불운으로 인하여 이제서야 광주에서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 날 경기 역시 박호진 선수의 슈퍼 세이브는 줄줄이 이어졌다. 그리고 드디어 올 시즌 첫 무실점 경기를 했다. 이날 경기의 Man of The Match에 박호진 선수가 선정되었으니, 더 이상 설명해봤자 입만, 아니 손만 아프다.
누가 용병인지 모르겠다. 그라운드 밖에서 몸을 풀던 유종현 선수와 주앙 로페즈.
이 날 그라운드 밖 MOM은 쉴새없이 주앙 로페즈를 괴롭히던 '유록바' 유종현 선수였다.
필자는 후반 중반 이후 주앙 파울로 선수가 교체출전할 것을 예상했다. 그리고 그러한 기대감은 주앙 파울로 선수가 그라운드 밖에서 다른 선수들과 계속 몸을 풀고 있어서 더욱 높아졌다. 하지만 최만희 감독은 후반 막판 김동섭 선수를 빼고 주앙파울로 대신에 안동혁이라는 카드를 선택했다. 공격보다는 수비에 중점을 두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최만희 감독의 선택은 적중했다. 후반 막판 무너졌던 수비가 이 날 경기에서는 끝까지 유지되었고, 게다가 안동혁 선수는 위협적인 슈팅으로 상대팀 골문을 위협하기까지 했다.
왜 더 공격적인 경기운영을 하지 못했냐고 의아해 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필자가 봤을 때에는 선수단의 분위기 전환을 위해서 연패를 끊기위해 경기 막판 수비적인 경기운영을 하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고 본다. 80분동안 실점하지 않았는데 10분을 제대로 막지 못해서 한 골을 허용하고 지는 것만큼 짜증나는 경우도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그리고 우리 팀이 이제까지 몇 번 그런식으로 패배를 맛봤기 때문에 나름 감독의 안동혁 카드는 주효했다고 본다.
물론 종목은 다르지만 기아타이거스의 경기운영을 보면 이러한 것을 더 확실히 알 수 있다. 기아는 이미 '역전의 명수'가 아닌 '역전패의 명수'가 되어버린지 오래다. 토요일 경기에서도 9회말 투 아웃에서 멋진 끝내기 피안타로 두산팬들에게 역전승의 감동을 주었다. 그 장면을 본 필자를 포함한 기아 팬의 입장에서는 '빡쳐서 돌아버릴 지경'이지만 말이다.
처음부터 지고있는 경기라면 상관이 없지만, 이기고 있는 경기를 감독의 판단 미스나 선수들의 뒷심부족으로 내주게 되버린다면 그 트라우마는 2배 이상 상승한다. 문제는 팬만 그런 것이 아니라 감독과 선수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물론 필자는 롯데자이언츠와 같은 공격적인 플레이를 선호한다. 축구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화려한 공격력으로 상대를 압도하지 못하고, 비등비등한 상황이라면 철저한 수비를 통한 뒷문 잠그기가 훨씬 효과적이라고 본다. 여담이지만, 조범현 감독은 최만희 감독에게 이 점을 배워야 할 것이다.
경기 후 인터뷰 중인 최만희 감독
현장에서 경기를 관람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우리 선수들은 매경기 정말 심장이 터져라 뛰어다닌다. '심장이 뛰는 한 광주답게'라는 플래카드를 보았는지, 정말 광주답게 심장이 터져라 뛰어다닌다. 필자는 이제까지 역전패를 당한 경기에서 패배의 아쉬움에 경기 후 쓰러져있는 선수들을 보며, 졌기 때문에 힘이 빠져서 그라운드에 누워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날 경기는 지지 않았다. 비록 결과는 무승부였지만, 점수를 제외한 모든 면에서 우리 선수들이 승리한 경기였다. 오히려 광주를 상대로 제대로 된 경기를 펼치지 못한 상주 선수들이 힘이 빠져서 그라운드에 쓰러졌어야 했고, 경기후에 화가난 상주의 이수철 감독 역시 이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 날 경기 이후에도 우리 선수들은 그라운드에 벌렁 누웠다. 이것은 다른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최선을 다해 경기 후에 그라운드에 주저 앉아 버릴정도로, 제대로 걷지 못할 정도로 혼신의 힘을 다해서 뛰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우리 선수들은 이제까지 승패에 관계없이 언제나 최선의 힘을 다해서 심장이 터지게 뛰었던 것이다.
이런 선수들의 모습을 경기장에서 직접 지켜보는 것은 웬만한 영화보다 훨씬 더 감동적이다. 그도 그럴것이 사실을 바탕으로 허구가 가미된 영화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결코 100% 실제 상황을 연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와 그라운드에서의 축구는 다르다. 그라운드에서의 축구는 100% 실제상황이다. 선수들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진실된 몸짓이고 싸움이다. 그러니 축구는 90분의 리얼 다큐멘터리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하지만 이것 또한 텔레비젼이라는 또 하나의 막을 거쳐서 보는 것과 그라운드에서 직접 선수들의 숨소리를 느끼며 보는 것이 다르다. 전자는 말 그대로 구경꾼에 불과하지만, 후자는 현장을 직접 체험하고 선수들과 함께 뛰는 12번째 선수가 되는 것이다. 시덥지 않은 축구 게임 따위를 하면서 그래픽이 좋다느니, 사운드가 좋다느니, 카메라 앵글이 좋다느니 떠들지 말자. 이 세상 최고의 그래픽을 보고, 이 세상 최고의 현장감 넘치는 사운드을 들을 수 있으며, 자기 마음대로 나만의 카메라 앵글을 잡을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경기장이다. 이 날 경기 공식 관중수는 7253명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선수들과 팬들과 호흡할 수 있었으면 한다. 다음 경기, 달라진 관중석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광주FC 명예기자 문혜빈(사진), 박양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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