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광주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FC서울과의 리그 7라운드 경기. 개막전 이후 컵대회 포함 승이 없었던 광주FC! 괜찮은 경기력에도 불구하고 항상 2%부족한 마무리 때문에 승리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주저앉았던 광주가 요새 성적이 신통치 않은 디펜딩 챔피언 FC서울과 홈에서 격돌했다. 사실 객관적인 전력을 놓고 봤을 때 광주가 서울을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옳았다. 스포츠 복권을 하는 사람들 역시 죄다 서울에 베팅을 했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비기기만 해도 광주로서는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하지만 광주에게 전혀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말이 디펜딩 챔피언이지 FC서울의 올 시즌 성적은 신통치 않은 정도가 아니라, 바닥에 가깝다. 선수단 스쿼드가 나쁜 것도 아니다. 까놓고 말해서 그들의 선수단 스쿼드는 국내 최정상급이다. 아무래도 돈 많은 구단이니 좋은 선수들 열심히 사다가 선수단을 구성할 수 밖에...... 하지만 그 좋은 선수들을 모아놔도 경기력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아니, 형편없다.
우연의 일치인지, 당연한 결과인지 모르겠지만, 작년 FC서울을 우승시킨 빙가다 감독의 후임으로 들어온 황보관 감독 때문에 이러한 결과가 발생했다고 보는 이가 많다. 솔직히 FC서울에 대해서 눈꼽만큼의 관심도 없고, 그 흔한 인터넷 동영상 한 번 제대로 보지 않은 필자로서는 사람들의 말처럼 ‘관 때문에’ 그렇게 되었나보다 하고 짐작만 할 뿐이었다. 물론 우리 선수들을 믿는 것은 분명하지만, 워낙 ‘관 때문’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어왔던 필자는 솔직히 황보관 감독에게 더 믿음이 갔다.
아무튼 이제 우리가 그들과 붙어야 할 차례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광주 팬의 심정으로는 ‘황보관 매직’이 내친김에 광주마저 살려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관 때문이야’라는 말이 부디 광주에서도 계속 이어졌으면 했다. 그리고 행복하게도 필자의 바람은 그대로 실현되었다!
서울전 선발 명단
우선 스타팅 멤버에서 광주는 지난 전남과의 컵대회 때 휴식을 줬던 선수들을 대거 기용했다. 이용, 안성남, 정우인, 박호진 등이 그들이다. 또한 전남전 때 무릎 타박상을 입었던 박기동 선수가 결장하고, 그 자리에 주앙 파울로가 선발 출장했다. 지난 경기에서 페널티킥 실축을 했지만, 최만희 감독이 보았을 때에는 파울로가 선발감이라고 생각했나보다. 박기동 선수의 주장 완장은 부주장 김은선 선수의 몫이었다. 아무튼 지난 컵 대회 때 선수들에게 충분한 휴식을 부여했던 최만희 감독의 판단은 결과적으로 오늘 적중했다.
아무튼 경기는 시작되었고, 광주 선수들은 평소처럼 열심히 뛰었다. 언제나 그렇듯 우리 선수들의 전반전은 참 괜찮다. 걱정되는 부분은 후반전 뒷심 부족이다. 그러나 이날 경기에서 우리 선수들의 뒷심부족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사실 이날 경기의 점유율 면에서 광주는 서울을 전혀 압도하지 못했다. 수치상으로 보면 전후반 통틀어서 35:65 정도의 수치로 서울에게 밀렸다. 하지만 축구는 점유율로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점유율을 무시해 버려서는 안되겠지만, 점유율이 높다고 해서 경기를 이기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날 경기에서 서울이 높은 점유율을 유지한 것은 자기 진영에서 공을 많이 돌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공격다운 공격을 거의 하지 못했고, 공격을 한다고 우리 진영으로 넘어와도, 우리선수들의 철저한 방어에 밀려서 제대로 된 슈팅을 하지 못했다. 수치상으로 슈팅 개수는 8:10으로 우리가 밀렸지만, 유효슈팅의 개수는 우리가 7개, 서울은 3개에 불과했다. 그만큼 우리 선수들은 점유율에서 밀렸지만, 훨씬 더 효율적이고 영양가 있는 플레이를 했다.
주앙 파울로 선수의 골 장면
아무튼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라는 말처럼 열심히 두드린 우리 선수들은 결국 상대 골문을 열었다. 이승기 선수의 감각적인 패스를 이어받은 주앙 파울로 선수의 골이 터진 것이다. 주앙 파울로 선수의 오른발 슈팅도 완벽했지만, 사실 이 골의 주인공은 이승기 선수라고 해도 무방했다. 그의 패스는 신속 정확하게 파울로의 발 앞으로 떨어졌다. 마치 이관우 선수의 전성기 시절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패스를 받은 주앙 파울로는, 지난 경기의 페널티킥 실축에도 불구하고, 여유있는 모습으로 골망을 갈랐다. 산전수전 다 겪어본 김용대 골키퍼지만, 이 골을 막아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그렇게 광주는 전반을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하지만 문제는 후반전이었다. 수원전도 그랬고, 울산전도 그랬고, 우리 선수들은 선취점을 넣고도 뒷심부족, 혹은 심판의 석연찮은 판정 때문에 패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그 악몽이 또 다시 재현될까봐 걱정했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은 이미 그 약점을 어느 정도 보완한 상태였다. 아까운 찬스를 놓치고 나서도 주눅 들거나, 급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선수들의 동작과 표정에서는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여유로움까지 느낄 수 있었다.
경기 후 이승기 선수의 모습. 진정한 살인미소다.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광주 선수들 중에서 가장 멋진 ‘살인미소’를 가진 이승기 선수의 모습이 특히 눈에 띄었다. 평소 같았으면 골 찬스를 놓친 아쉬움 때문에 머리를 쥐어 뜯거나 실망하는 표정이 많았는데, 이 경기에서는 그러한 모습 대신에 팬들을 향한 살인미소를 보냈다. 또한 다른 선수들의 플레이 역시 전반적으로 여유가 넘쳤다. 상대팀 선수가 압박을 하려고 들어와도 전혀 서두르거나 당황하지 않고 여유있게 공을 돌렸다. 그 모습을 보면서 필자는 ‘아, 이제 됐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확실히 우리 선수들은 아마추어 선수에서 프로 선수로 시나브로 변해가고 있었다.
후반에 들어와서 서울은 문기한 대신에 몰리나를 투입했다. 워낙 좋은 선수라서 걱정이 많았지만, 우리 선수들 전혀 동요하지 않고, 기존의 플레이를 이어갔다. 경기종료를 10분 남겨놓은 상황에서 심판의 석연치 않은 판정 때문에 김수범 선수가 퇴장당했다. 그리고 박기동 선수 대신에 주장 완장을 차고 나섰던, ‘간지남’ 김은선 선수는 곧바로 심판에게 거칠게 항의했다. 기에서 밀리지 않으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필자는 그 모습을 보면서, 분위기 반전으로 또 다시 이렇게 역전당하는 것은 아닌가 걱정했지만, 우리 선수들은 이미 그따위 걱정을 할 수준을 넘어섰다. 상대는 후반 막판 파상공세를 펼쳤고, 광주는 그들보다 1명이 부족한 10명의 선수로 싸웠지만, 철저하게 우리만의 플레이를 했다. 설상가상으로 서울은 완벽한 몇 번의 찬스마저 확실하게 날려버리며 광주 선수들과 팬들을 웃음짓게 했다. 완벽한 찬스를 연거푸 날려버리는 서울 선수들을 보면서, ‘발야구를 하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결국 광주는 홈에서 서울에게 짜릿한 승리를 엮어냈다. 개막전의 감동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이 경기의 승리는 우리 선수들에게 충분한 반전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팬들에게도 지긋지긋한 ‘희망고문’의 종료를 알렸다. 공교롭게도 오늘은 기독교의 절기상 부활절이었는데, 우리 광주의 주작들은 부활절에 완벽하게 부활을 해버렸다. 그리고 그 중심에 ‘관’과 우리 멋진 광주FC의 선수들, 명장 최만희 감독과 코칭스태프 및 열정적인 팬들이 있었다. 서울을 응원하는 사람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한 미소가 흘러 넘쳤다. 정말 행복한 순간이었다.
'광주의 말디니' 허재원 선수와 '초작살 간지남' 김은선 선수
오늘 경기의 MOM으로는 결승골을 성공시킨 주앙 파울로 선수가 선정되었다. 완벽한 결승골을 넣어버렸으니 충분히 그럴 법 했다. 하지만 이외에도 우리 선수들은 고른 활약을 보였다. 우선 수비라인에서는 허재원 선수가 굉장히 눈에 띄었다. 전남전에서는 약간 몸이 무거워보이는 듯한 움직임이었는데, 오늘 경기에서는 전후반 내내 환상적인 움직임을 선보였다. 이용 선수와의 협력 수비도 일품이었다. 충분히 ‘광주의 말디니’로 불릴만 했다. 말도 안되는 피지컬로 상대 수비수를 압도해버린 '광주의 검은 비디치' 유종현 선수도 대단했다. 전반전에 유종현 선수를 잘못 건드려 쓰러지게 만든 아디선수, 사람을 잘못 건드려도 한참 잘못 건드렸다. 왜 하필이면 그런 선수를 건드려서...... 결국 이후에 아디 선수는 유종현 선수에게 제대로 복수를 당했다.
'광주의 검은 비디치' 유종현 선수. 아디는 오늘 상대를 잘못 골라도 한참 잘못 골랐다.
주앙 파울로의 골을 만들어 준 이승기 선수 역시 언제나 그랬듯이 에이스의 모습을 보여줬다. 불필요한 드리블 대신에 센스있는 패스를 통해 상대 수비수들을 ‘탈탈 털어준’ 이승기 선수 역시 오늘의 수훈 선수다. 부상중인 박기동 선수 대신에 주장 완장을 차고 등장한 김은선 선수 역시 기복없는 활약으로 ‘간지나는’ 플레이를 보였다. 튼튼한 수비 외에도 중간중간 적극적인 공격가담으로 서울 수비수들의 혼을 빼 놓았다. 무엇보다도 김수범 선수의 어이없는 퇴장 판정에 적극적으로 심판에게 항의하는 모습은 ‘간지’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보여줬다.
우리팀의 정신적인 지주이자 실질적인 에이스인 박호진 선수는 역시나 오늘도 거미손의 활약을 보였다. 이쯤되면 ‘광주의 야신’ 정도로 불러줘야 할 것 같다 오늘 서울의 공격이 형편 없어서 제대로 된 유효슈팅을 몇 번 날리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박호진의 활약이 나타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아무리 티를 안내려고 해도, 튀는 사람은 결국 튀게된다. 그리고 박호진 선수는 오늘도 확실히 튀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그가 서있는 골문은 언제나 든든하다!
박호진 선수가 지키는 든든한 광주의 노란 골대
오늘 광주 경기장은 한 가지 큰 변화가 있었다. 골대 그물을 노란색으로 교체했다.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 광주만의 특이한 모습들을 보여주는 것도 굉장히 좋은 선택이라고 본다. 우연의 일치일지도 모르지만, 그 노란 골대 덕분에 우리는 오늘 승리했다. 앞으로도 노란 골대의 기운을 받아서 광주가 시민을 위한 멋진 경기를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광주FC 서포터 정시내(사진), 광주FC 명예기자 박양태(글)-
'광주FC > 2011'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터뷰] 광주FC의 캡틴 박기동 선수를 만나다. (1) | 2011.04.29 |
---|---|
[인터뷰] 광주FC의 귀요미 '요박' 박요한 선수를 만나다. (0) | 2011.04.26 |
이운재의 선방쇼와 유동민의 발견 (0) | 2011.04.21 |
심장이 뛰는 한 광주답게! (0) | 2011.04.18 |
[인터뷰] '초작살 간지남 짐승돌' 김은선 선수를 만나다. (0) | 2011.04.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