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FC와 부산 아이파크의 2011 K리그 12라운드 경기. 지난 컵 대회에서 부산에게 0:1의 아쉬운 패배를 당했던 광주FC는 그 당시의 패배를 설욕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이 경기에 임했다. 요즘 매일같이 스포츠 신문을 장식하고 있는 K리그 승부조작 사태. 그리고 거기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광주FC가 승부조작의 의혹을 받았던 경기가 바로 부산 아이파크와의 지난 컵대회 경기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승부조작에 가담한 선수가 그 경기에 출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광주가 승부조작을 한 것은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어쨌거나 그 경기에서 아쉬운 패배를 당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이 경기에서 이겨준다면 조금이나마 그 찝찝한 마음을 달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요새 부산은 말 그대로 거침없는 상승세를 기록 중이다. 그리고 그 상승세의 시작이 앞에서 말했던 광주FC와의 컵대회 경기였다. 이 경기를 시작으로 부산은 12경기 연속 무패를 기록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광주로서는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게다가 원정경기이기 때문에 그 부담은 더 클 수밖에 없다. 그나마 부산의 안익수 감독이 지난 라운드 수원과의 경기에서 퇴장 당했기 때문에 이 경기에 나오지 못한다는 점 정도가 광주에게는 호재라면 호재라고 할 수 있었다.
경기 전에는 양 팀 선수들이 모여서 '불법 행위 근절과 예방을 위한 부정 방지 선서'를 했다. 필자는 그 장면을 보면서 울컥하는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어쩌다가 우리가 사랑하는 K리그가 이런 사태까지 오게 되었는지 안타까운 마음을 주체할 방법이 없었다. 너무나 비참했다. 맨 처음 승부조작 기사가 뜰 때부터 부산원정을 오게 될 때까지 계속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던 감정이 선수들의 선서하는 모습을 보니 더욱 더 고조되었던 것 같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승부조작 사태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중들이 경기장을 찾아줬다는 점이다. 이번 사태로 인하여 K리그에 관중이 끊기고 말 것이라느니, K리그가 몰락할 것이라느니 하는 말도 안되는 기사들이 줄줄이 나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야구팬이 월등히 많은 부산이지만, 이 날 경기에는 꽤 많은 관중들이 경기장을 찾아줬다. 물론 광주경기장을 찾아준 팬들은 아니지만, K리그를 사랑하는 한 팬으로서 굉장히 보기 좋고, 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있자면, K리그의 몰락을 예상하는 기사들을 쓰는 기자들이 얼마나 한심하고 황당한 예상을 하고 있는지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아마 K리그가 몰락하는 것보다는 그들이 근무하고 있는 신문사나 방송사가 천벌을 받아 무너질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고 본다.
어쨌거나 우리 선수들은 요즘 불거지고 있는 K리그 승부조작 사태 때문에 더욱 더 열심히 뛰는 것 같았다. 젊은 패기로 무장한 우리 선수들은 항상 두 다리가 부서질 정도로 경기장에서 최선을 다하지만, 이 경기에서는 평소보다도 더 열심히 뛰는 것 같았다. 직접적으로 승부조작을 한 선수가 이 경기에 뛰지는 않았겠지만, 어쨌거나 같은 리그에서 뛰었던 선수, 더 나아가 같은 팀에서 뛰었던 선수가 이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모든 선수들은 결코 그 사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리고 책임감을 느껴야한다. 때문에 양팀 선수들은 마치 이 사건에 대해서 팬들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그라운드 내에서 모든 것을 쏟아 붓겠다는 자세로 경기에 임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결국 광주는 부산 원정경기에서 귀한 승점 1점을 따내고야 말았다.
광주보다 훨씬 많은 선수가 이번 사건과 관련되어있는 대전 역시 ‘살아있는 전설’ 최은성 선수가 경기 후 인터뷰에서 말한 것처럼 ‘살기 위해’ 뛰었지만, 그들은 강호 전북을 만나 2:3의 안타까운 패배를 하고 말았다. 아무래도 분위기 반전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나마 광주는 승점 1점을 이 경기에서 획득하여 그나마 팀 분위기가 더 나빠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불행 중 다행이다.
감독이나 선수의 입장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팬의 입장에서는 이 경기의 승패가 중요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승점 3점보다 침체되어있는 팀 분위기를 정상화 시키는 것이 최대 목표였다. 그리고 부산으로 떠나는 원정 버스 안에서 여러 명의 광주 지지자들은 이러한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 경기는 승패에 구애받지 말고 힘든 우리 선수들에게 최대한의 힘을 실어주자고’
사실 객관적인 입장에서는 상승세의 부산을 맞아 광주가 패배할 가능성이 훨씬 높은 경기였다. 그래서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원정길에 나섰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 승점 1점을 획득해주고, 팬들을 위한 경기를 보여주었다. 진심으로 우리 선수들과 코칭스태프에게 감사하다.
이 날 경기에서 광주FC는 김수범과 김은선, 이용 선수가 결장했다. 아쉬운 부분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대체 불가능한’ 이용 선수의 자리가 걱정되었는데, 임하람 선수가 투입되면서 수비라인에 유종현, 박병주, 임하람이 세워졌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임하람 선수는 무난한 활약을 보여줬다. 광주FC에게 임하람 선수는 가뭄의 단비같은 존재다.
또한, 평소 다른 팀에게 점유율 면에서 대부분 압도당했던 광주FC가 이 날 경기에서는 부산을 압도했다. 지난 컵대회에서 45:55 정도의 수치로 부산에게 점유율 면에서 밀렸던 광주FC는 이날 55:45 정도의 수치로 부산을 밀어냈다. 시즌 초반에 비해서 현저하게 변화한, 그리고 이 악물고 최선을 다해 뛰는 광주의 모습을 또 다시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유효 슈팅에서는 5:7의 수치로 부산에 밀렸지만, 슈팅 개수 자체는 10:8로 부산에 앞섰고, 전체적으로 우리 선수들은 나름대로 괜찮은 활약을 보였다. 선발 출전했던 박기동 선수와 김동섭 선수의 움직임도 괜찮았다. 특히 박기동 선수의 활약은 눈에 띄었다. 지금의 상황에서 한 골만 터지면 다시 시즌 초반의 박기동으로 돌아올 수 있을텐데 그렇지 못한 점이 너무나 아쉬웠다. 그의 실력은 변함이 없는데 정신적인 부분에서 아직 문제가 있지 않나 싶다. 골을 넣어야한다는 부담감을 씻어낼 필요가 있다.
이외에도 항상 좋은 찬스를 만들어내지만 불운과 2%의 부족함 때문에 골 사냥에 실패한 선수들이 몇 있다. 안성남 선수와 안동혁 선수가 그들이다. 분명히 골을 넣을 수 있는 충분한 실력이 있는 선수들인데, 생각처럼 결과가 나타나지 않아 안타깝다. 그러나 그들 모두 한 골만 터지게 되면 줄줄이 골 행진을 이어나갈 수 있는 선수들이다. 게다가 그들이 광주FC 전체에 불어넣어주는 힘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부디 우리 공격진들이 골에 대한 부담감을 털어버리고 자신있는 플레이를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날 우리 선수들의 의욕과 하고자하는 마음은 확실히 대단했다. 단지, 그러한 마음이 너무 과도했던 나머지 파울의 개수가 너무 많았다. 부산의 파울 개수가 12개, 광주의 파울 개수가 23개였으니 말 다했다. 그나마 부산처럼 결정적인 실수를 해서 퇴장을 당한 선수가 없었다는 점이 다행이다. 평소라면 광주의 파울 개수들을 지적해야겠지만, 이 날 경기는 평소와 다른 분위기였기 때문에 선수들의 파울 개수보다는 그들의 하고자하는 정신력을 더 높이 사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부산 입장에서는 굉장히 신경이 거슬렸겠지만, 광주입장에서는 박수받을 만한 부분이다.
전반전을 0:0으로 마친 양팀은 후반이 되어서야 골 사냥을 시작했다. 그리고 선제골은 부산에서 나왔다. 김창수의 우측 돌파에 이은 크로스를 임상협 선수가 깔끔한 헤딩골로 연결시켰다. 머리에 딱 맞춰주는 크로스와 그것을 잘 받아 처리했던 임상협 선수의 헤딩이 굉장히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상대팀이지만 임상협 선수의 머리와 공이 자석처럼 달라붙어 골대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광주 입장에서는 유종현 선수가 그 상황을 막기 위해 달려들었지만, 순간적으로 임상협 선수를 놓치는 바람에 제대로 방어하지 못한 부분이 아쉬웠다.
실점 이후 최만희 감독은 안성남 선수 대신에 주앙 파울로를 투입한다. 그리고 이후에는 김동섭과 박기동을 빼고 유동민과 안동혁을 투입한다. 공격적인 플레이로 후반 막판에 득점하겠다는 심상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적중했다. 사실 김동섭과 박기동의 호흡에 비해서, 박기동과 주앙 파울로의 호흡이 제대로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그나마 김동섭과 주앙 파울로의 호흡은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광주 입장에서 김동섭과 박기동의 막강화력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박기동과 김동섭을 동시에 교체시켜주는 대신에 제공권을 확실하게 장악할 수 있는 유동민과 몰아치는 능력이 탁월한 안동혁 선수를 통해 전술의 변화를 꾀한 것이다.
유동민은 이 날 경기에서 위력적인 슈팅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끊임없이 헤딩을 통한 공중볼 경합으로 우리 선수들에게 기회를 만들어줬다. 그리고 후반 막판 부산 홍성요는 유동민 선수에게 반칙을 해서 레드카드를 받고 만다. 유동민 선수는 통증을 이기지 못해서 그라운드 바닥에서 뒹굴며 굉장히 고통스러워했지만, 다행히도 이후에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팬의 입장에서는 가슴 철렁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홍성요의 퇴장 덕분에 광주는 이후 파상공세로 상대를 몰아칠 수 있었다.
후반 막판 광주의 파상공세는 확실히 위력적이었다. 과연 우리 팀이 이제까지 역습 위주의 전술을 썼던 팀이 맞나 할 정도였다. 마치 지난 전남과의 컵대회에서 상대를 몰아쳤던 그 때의 모습 같았다. 결국 후반 인저리 타임 때 광주의 주앙 파울로 선수는 상대 선수를 한 명 제친 이후 기가막힌 왼발 중거리 슛으로 상대팀의 골망을 갈랐다.
이후 상대 선수들은 그라운드에서 넋을 놓고 쓰러졌고, 주앙 파울로 선수는 그 큰 부산 아시아드 경기장에서 부산까지 응원을 와준 서포터스를 향해 먼 거리를 뛰어와 무릎을 꿇고 엠블럼에 키스를 하며 멋진 세리머니를 보여줬다. 기가막힌 극적 동점골로도 감동을 이루 말할 수 없었는데, 주앙 파울로 선수의 멋진 골 세리머니까지 보니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가 없는 찡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주앙 파울로 광주 명예시민증이라도 줘야할 것 같다. 정말 너무나 짜릿하고 심장이 터질듯한 순간이었다. 다른 선수들은 팬들을 향한 주앙 파울로의 이런 멋진 정신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사실 이 날 경기에서 광주 선수들은 굉장히 많은 찬스를 잡았지만, 그 때마다 불운과 반복되는 패스미스 때문에 득점에 성공하지 못했다. 그 찬스 중에서 몇 개만 살렸어도 광주는 훨씬 안정적이고 여유있는 경기운영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하지 못했고, 상대팀에 선제골을 내주면서 어려운 경기를 이어갔다. 하지만 후반에 투입된 ‘슈퍼 서브’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슈퍼 주전’ 주앙 파울로 덕분에 광주는 적진에서 귀한 승점 1점을 획득할 수 있었다. 이 골의 의미는 일반 골과는 다르다. 패배의 수렁에서 팀을 구해내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침체되어있는 분위기를 더 악화되지 않게 만들어준 멋진 골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골 장면 역시 필자가 보기에는 이번 라운드 최고의 골이었다. 골 세리머니는 너무 멋있어서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이래저래 매우 값진 골이다.
경기 막판 승리를 앞둔 부산의 입장에서는 어이없게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 나쁜 골이었다. 결과는 1:1의 무승부였지만, 부산 입장에서는 패배와 다름없는 결과였다. 그나마 무패 기록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해야했다. 반대로 광주 입장에서는 비기고도 이긴 것 같은 분위기였다. 솔직히 개막전 대구와의 경기, 컵대회 상주와의 경기보다도 더 재미있는 경기였다. 덩달아 원정을 떠난 광주 팬들까지 마치 경기에서 이긴 듯 자랑스럽게 어깨에 힘을 줄 수 있었다. 큰 힘이 되지는 않겠지만, 분명히 이 날의 경기는 우리팀의 분위기 반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이다.
이제 A매치 주간이 다가오면서 다시 2주간 리그 휴식기가 찾아온다. 지난 인천전 패배 이후 명장 최만희 감독은 2주간의 리그 휴식기를 통해 다시 팀을 재정비하겠다고 공언했다. 예상치 못하게 승부조작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고 말았지만, 경험 많은 명장 최만희 감독이라면 충분히 그 기간동안 우리 선수단을 추스르고 새롭게 도약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이제 나머지 부분은 우리 팬들의 몫이다. 분명히 미꾸라지 한 마리가 팀의 분위기를 해친 것은 틀림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의 입장에서는 한 팀의 동료, 한 팀의 선배였다. 그리고 다른 팀에 비해서 경험이 없고, 상대적으로 어린 우리 선수들에게 이번 사건의 트라우마는 훨씬 더 클 것이다. 우리 선수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것은 결국 팬들의 몫이다. 우리 선수들에게 더 큰 사랑과 아낌없는 관심을 보내주자. 비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지듯이 이번 일을 계기로 K리그와 광주FC는 더욱 더 굳은 땅이 될 수 있다. 광주FC와 K리그가 더 굳은 땅이 될 수 있도록 우리 팬들이 온 힘을 다해서 도와주는 것은 어떨까? 벌써부터 6월 11일열리는 성남과의 홈경기가 기대된다.
-광주FC 서포터 정시내(사진), 광주FC 명예기자 박양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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