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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FC/2011

씁쓸한 강원전 비하인드 스토리

 

 

  광주광역시 남구에 자리잡고 있는, 마피아가 득실거린다는 한 여자고등학교의 바로 옆 학교를 졸업한 필자는 지난 강원전에서 8년 만에 반가운 고등학교 동창을 두 명이나 만났다. 하지만 필자는 그들을 보면서 반가움을 나타내기 보다는 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싫어서도 아니고, 반갑지 않아서도 아니었다. 당시의 상황이 필자를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비록 가까이 지내던 친구들은 아니었지만, 고등학교 졸업 이후 처음 마주친 친구들 앞에서 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과연 무엇 때문이었을까?

  강원전을 경기장에서 직접 관람한 사람들은 모두가 알고 있겠지만, 강원전이 열렸던 그 날, 전반 초반에 광주 월드컵 경기장 N석에서는 한바탕 큰 소란이 일어났었다. 하지만 그 때의 상황을 신문이나 방송에서 찾아보기는 하늘의 별따기이다. 당시의 상황을 카메라에 담았던 사람들은 꽤 있었던 것 같은데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몇몇 축구 카페나 커뮤니티에서는 그 당시의 상황을 찍은 동영상과 사진들이 돌아다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상황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 같다.

  요즘 광주FC의 구단 홈페이지를 자주 들락거리는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겠지만, 단장 퇴진에 관한 글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자유게시판에 올라오고 있다. 필자는 단장을 퇴진시키자, 혹은 퇴진시키지 말자 하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단지 당시의 상황을 조금이나마 알리는데 일조하고자 이 글을 쓰는 것이다.

 

 

  광주FC의 서포터스 ‘빛고을’은 지난 강원전부터 공식적으로 단장퇴진 운동을 펼쳐나가기 시작했다. 그 첫 스타트를 장식한 것은 바로 경기 중에 게릴라식으로 그들의 뜻을 담은 걸개를 거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걸개는 그들의 생각만큼 쉽게 걸리지 않았다. 아니, 어찌보면 그들은 그들의 걸개가 쉽게 걸리기는 힘들 것이라는 것을 미리 예상했을지도 모르겠다.

  필자의 눈이 틀리지 않았다면 평소에 광주 월드컵 경기장의 N석에는 경호원이 배치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날은 그렇지 않았다. 아르바이트생인지 경호원들인지 모르겠지만 조끼를 입은 사람 몇몇이 경기 한 시간여 전부터 N석에 배치되었다. 특별한 행사가 있었다면 네이밍 데이 행사 정도인데 그 행사의 초대손님 대부분은 E석에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N석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었다. 하지만 N석에는 경호원들이 배치되었다. 장담할 수는 없지만, 서포터스의 계획을 미리알고 구단 측에서 그들을 그 자리에 배치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무튼 경기가 시작되었고, 전반 초반에 갑자기 광주 서포터스 회원들은 단장 퇴진에 대한 걸개를 난간에 달려고 시도했다. 그러자 갑자기 사방에서 경호원들이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홍염이 하나 터졌다. 관중들의 시선을 모으기 위한 서포터스의 행동이었다. 결과적으로 서포터스의 주목받기 위한 전략은 성공했다. 하지만 동시에 경호원들이 달려들면서 광주 월드컵 경기장 N석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리고 서포터스 회원들의 걸개 사수작전과 이를 막으려는 경호원들 간의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필자는 나름대로 중립적인 입장에서 이 상황을 보고자 했지만, 경호원들까지 투입하여 몸싸움을 하게 만들고, 걸개까지 접게 만들려고 했던 구단의 선택은 굉장히 실망스러웠다. 일반적으로 경호원들은 경기장에서 위험한 행동을 하거나 관중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들을 막기 위하여 투입되는 것이 보통인데, 아무리 보아도 이날 서포터스 회원들의 걸개 거는 행위가 이러한 것들에 해당되는 것 같지는 않아보였다.

  경기와 관련없는 문구를 걸었기 때문에 이를 저지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당시 원정 서포터스 석인 S석에는 강원 서포터스들이 김원동 사장을 지켜내기 위한 걸개를 걸어둔 상태였다. 그들 역시 경기와 관련없는 문구를 걸었던 것은 광주 서포터스와 큰 차이가 없었던 것 같은데, 왜 광주 서포터스의 걸개에만 딴지를 걸었는지 필자는 아직도 제대로 된 이유를 모르겠다. 부디 단장의 퇴진운동을 무마시키고, 일반 시민들의 눈과 귀를 막아버리기 위한 선택이 아니었기를 바랄 뿐이다. 아무튼 서포터스 회원들과 경호원들 간의 충돌은 10분 이상 계속되었다. 그리고 이 난장판 속에서 필자는 우연히 고등학교 졸업 이후 8년 만에 동창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경호원으로 경기장에 투입된 친구들이었다.

 

 

  필자나 그들이나 참 민망한 상황이었다. 더 황당하고 민망한 것은 그들이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단지 위에서 시키는 대로,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는 사람들에 불과했다. 그들은 서포터스 회원들에 대한 악감정도 없었고, 그렇다고 하여 단장 퇴진운동에 대해서 반기를 드는 사람들도 아니었다. 단순하게 상황을 진정시키기 위하여 구단에서 투입시킨 친구들에 불과했다.

  덕분에 제대로 된 이유도 없이 서포터스 회원들과 경호원들과의 충돌이 계속되었다. 텔레비전에서 수시로 나오는 전·의경들과 일반 시민들의 유혈 충돌 사태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어쨌거나 가벼운 몸싸움 정도의 충돌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이 때문에 경기장 내의 분위기는 갑자기 어수선해졌고, 이는 분명히 벤치와 선수들의 플레이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 충돌의 말미쯤에 광주의 이승기 선수가 선취골을 넣었다는 것 정도이다.

  아무튼 이 날의 상황은 굉장히 씁쓸했다. 누가 잘했건 못했던 간에 팀을 가장 열정적으로 지지하는 서포터스 회원들에게 이런 식으로 경호원들을 투입하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는 선택이었다. 기업구단도 아닌, 시민구단에서 시민들의 세금과 주식 공모를 통해 모은 돈으로 할 짓은 분명히 아니었다. 이런식으로 몸싸움을 하게 만들 것이었다면, 차라리 경호원들이 아닌 구단 직원들이 나왔어야 할 것이다. 그랬다면 차라리 이것보다는 나은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소한 경호원 투입에 필요한 비용 정도는 아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날 경호원들과 대치했던 많은 서포터스 회원들 가운데에는 광주 서포터스 ‘빛고을’의 수도권 지부인 ‘주작’ 회원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일반 팬들은 잘 모르겠지만, 이들은 엄청난 부담을 떠안으면서 매 경기 광주를 외치고 있다. 이들에게 홈경기라고 하는 것은 대략 상암에서 열리는 경기 정도가 전부가 아닐까 싶다. 광주 홈에서 열리는 경기라도 하더라도 그들에게는 원정경기와 다름없다. 다들 알겠지만, 수도권에서 모여 광주까지 내려오는 길은 대략 3시간 반에서 4시간 가량이 걸린다. 왕복시간을 따지고 경기 관람시간을 포함한다면 대략 10시간 이상이 걸리는 긴 시간이다. 웬만한 팬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헌신적인 모습임에 틀림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광주의 일반 팬들처럼 원정을 떠날 때 구단의 지원을 받는 것도 아니다. 자세한 내막은 필자가 알 수 없지만, 그들에게는 구단의 지원이 단 한 푼도 이루어지지 않아서 자비로 교통비와 티켓비 등을 부담하고 엄청난 시간을 부어가면서 광주와 광주 선수들을 외치기 위해 매 경기에 참석한다. 거리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들은 대략 한 경기를 보러오는데 교통비로만 3만원에서 5만원 가량을 지출하는 것으로 알고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자가 나서 몇몇 직장인 회원들은 자비로 이러한 부분을 메우고 있다고 한다.

  한 두 경기면 큰 상관이 없지만 매 주 있는 리그 경기를 생각해본다면 분명히 소액의 금액은 아니다. 컵대회와 FA컵을 생각해보면 금액은 상상 이상으로 늘어난다. 많은 수의 ‘주작’ 회원들은 이러한 희생을 하면서까지 광주를 응원하기 위하여 경기장을 찾지만, 금전적으로 어려움이 많은 학생 회원들은 시간을 할애하고 광주를 외치기 위한 뜨거운 열정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금전적 어려움 때문에 경기장을 찾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시즌 초반 상당히 많은 수가 모였던 ‘주작’ 회원들의 경기장 참석 인원은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필자는 ‘주작’ 회원들이 금전적인 사정으로 인하여 앞으로 한 달에 한 번 정도만 광주경기에 내려오게 생겼다는 소리도 들은 적이 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작 회원들은 얇은 지갑을 털어서 돈을 걷고 본인들이 직접 차를 렌트하며, 피곤한 몸을 이끌고 손수 봉고차를 운전하여 광주 경기장을 찾는다. 이 정도면 골수팬도 보통 골수팬들이 아니다. 그런데 이러한 팬들에게 아낌없는 지원을 해줘도 모자랄 판에 구단은 그러한 돈으로 경호원들을 투입하여 이들과 충돌을 하게 만들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그리고 그러한 일들을 직접 경험하고 있는 ‘주작’ 회원들의 상실감과 배신감은 분명히 상상 그 이상일 것이다.

  어딜가나 마찬가지겠지만, 제대로 된 기업구단이 아닌 시민구단과 도민구단은 아무래도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안 그래도 이렇게 어려운 재정을 팬들을 막기 위한 경호원을 투입하는데 사용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차라리 그 돈으로 매 경기 힘들게 광주 경기장을 찾는 ‘주작’회원들에게 교통비라도 지원해 주는 것이 훨씬 생산적이고 팀을 위한 선택이라고 본다.

  아무래도 새로 시작하는 신생팀이라서 기존의 구단에 비해서 부족한 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한 번 저지른 실수를 인지하고도, 또 다시 그러한 실수를 저지르는 것은 실수가 아닌 고의적인 잘못이다. 아마 이번 주말에 열리는 전북전에서도 단장 퇴진을 위한 서포터스의 움직임은 계속될 것 같다. 과연 서포터스의 행동들이 옳은 것인지, 이들을 막는 구단의 행동이 옳은 것인지 필자는 확실하게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손바닥으로 해를 가릴 수는 없다. 그리고 진실은 끝내 밝혀지기 마련이며, 최후의 순간에는 정의가 승리하는 것이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과연 어떠한 정의가 승리하게 될지 두고 볼 일이다.

 

-광주FC 서포터 정시내(사진), 김선주(영상), 광주FC 명예기자 박양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