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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FC/2011

이승기가 시작했고, 이승기가 끝냈다.

  광주FC와 강원FC의 K리그 17라운드 경기. 올 시즌 두 팀 간의 세 번째 맞대결이 드디어 빛고을 광주에서 열리게 되었다. 첫 번째 맞대결에서 0:5의 대패, 이후 두 번째 맞대결에서 1:0의 신승을 거둔 광주FC에게 이번 경기는 후반기 승수 쌓기와 분위기 반전을 위해서 굉장히 중요한 경기였다. 앞선 두 경기는 모두 강원의 홈구장에서 열렸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매우 불리한 환경에서 경기를 펼쳤지만, 이번 경기는 광주의 홈구장에서 열렸기 때문에 그 전의 경기보다는 상대적으로 좋은 경기내용을 기대할 수 있었다. 반면 강원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먼 거리를 이동하여 경기를 치러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기에 한 가지 변수가 생겼다. 바로 비다. 이 날 광주에는 하루 종일 정말 많은 양의 비가 내렸다. 필자가 ‘비오는 날 공을 좀 차봤는데......’, 비오는 날은 확실히 공 차는데 장애가 많다. 결국 비오는 날 흙탕물에서 공을 차는 필자나 천연잔디에서 공을 차는 선수들이나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정상적인 경기를 펼치기 힘든 것은 똑같을 것이다. 다만 비가 우리 선수들의 플레이보다는 강원 선수들의 플레이에 더 많은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하길 바랄 뿐이었다.

  이 날 양팀의 초반 경기력은 큰 차이가 없었다. 양팀이 치고받기를 반복하는 분위기였다. 두 팀의 전후반 슈팅 개수도 같았다. 양팀 모두 전반 5개, 후반 5개의 슈팅을 기록하였다. 하지만 그 정확도에 있어서는 확실히 차이가 났다. 양팀 모두 총 10개의 슈팅을 기록했는데, 그 가운데 광주는 7개의 슈팅을 유효슈팅으로 연결했고, 강원은 고작 2개의 슈팅만을 유효슈팅으로 연결시켰다. 그만큼 광주의 집중력이 돋보였던 경기였다.

  비록 기록상의 점유율에서 강원이 광주에 앞섰더라도, 이 날 경기에서 강원이 경기를 지배했다고 보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강원의 슈팅은 영점 조절이 전혀 되지 않았다. 기상 조건이 좋지 않아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우리 광주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광주의 집중력이 이 경기의 승패를 좌우했던 원동력이었다고 본다.

  광주의 첫 골은 전반 28분에 터졌다. 수비형 미드필더인 김은선 선수가 순간적으로 공격에 가담하여 크로스를 올렸다. 하지만 이는 우리 선수의 키를 살짝 넘겼고, 결국 박기동 선수의 발 앞에 떨어졌다. 박기동 선수의 입장에서는 곧바로 슈팅으로 연결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특히 최근의 골 가뭄 때문에 심적 부담감이 큰 박기동 선수에게는 아마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하지만 박기동은 필자와의 인터뷰에서도 강조했듯이 개인보다는 팀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멋진 선수였다. 그는 주장답게 개인의 골 욕심보다는 팀을 위한 선택을 했다. 골대 앞의 더 좋은 위치에 있었던 이승기 선수에게 지체없이 패스를 연결한 것이다. 그의 이 패스는 자신의 골보다는 팀의 선취골을 위한 완벽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캡틴 박기동의 선택이 보답이라도 하듯이 ‘광주의 아들’ 이승기 선수는 이를 깔끔하게 차 넣으며 선취골 획득에 성공했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골 장면이었다.

  슈팅 대신에 패스를 선택한 캡틴 박기동 선수는 비록 골 사냥에 실패했지만, 공격포인트를 하나 추가할 수 있었고, 박기동의 패스를 이어받은 이승기 선수의 골은 이날 광주가 승기를 잡는데 굉장히 큰 역할을 했다. 이승기 선수의 골을 시작으로 광주는 자신감을 얻고 강원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기 시작했다.

 

 

  이승기 선수의 두 골에 가리기는 했지만, 이 날 박기동 선수의 측면 돌파는 굉장히 위력적이었다. 박기동 선수가 공을 잡으면 상대 수비수 두 명 정도는 자동으로 그를 집중마크 하는 모습을 시종일관 볼 수 있었는데, 이들을 놀리기라도 하듯 박기동 선수는 그들 사이를 자유롭게 드리블하며 빠른 돌파를 보여주었다. 매 경기 느끼는 것이지만 191cm의 큰 키를 가진 선수가 어떻게 저런 놀라운 발재간과 스피드를 보여줄 수 있는지 참으로 놀랍다. 또한 상대 선수를 등지고 펼치는 박기동의 플레이는 언제나 상상 그 이상이다.

  아무튼 박기동은 과감한 돌파를 통해 상대팀의 수비진을 실컷 농락시켰고, 동시에 우리 선수들에게 여러 번의 찬스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비만 아니었더라면 그러한 찬스들이 여러개 골로 연결되었을 텐데 그렇게 되지 못해서 안타까웠다. 특히 박기동이 만들어준 김동섭 의 슈팅은 그중에서도 더욱 그러했다. 이 날 경기의 MOM으로는 이승기 선수가 선정되었지만, 박기동 선수의 플레이는 전혀 거기에 뒤지지 않았다고 본다. 그만큼 이 날 박기동의 플레이는 눈부셨다.

 

 

  박희성의 플레이도 상당했다. 최근 들어서 시즌 초반에 비해 부쩍 좋아진 기량을 보여주고 있는 박희성은 이 날 경기에도 선발 출장하여 풀타임을 소화하며 맹활약했다. 그의 플레이 덕분에 우리 공격진의 공격력은 한층 더 좋아졌다. 키는 작지만 화려한 발재간과 정확한 킥, 그리고 타고난 축구센스를 통해 후방지원을 확실하게 해줬던 박희성 선수는 확실히 우리 팀의 보배임에 틀림없었다.

 

 

  상대를 끊임없이 몰아치던 광주는 결국 후반 14분에 터진 이승기 선수의 쐐기골로 경기를 사실상 마무리 지어버렸다. 상대 수비수들에 의해 완벽하게 둘러싸인 상황에서도 끝까지 볼에 대한 집중력을 잃지 않았던 이승기 선수는 빗물이 고여 제대로 드리블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상대 선수들을 줄줄이 제치고 슈팅을 하며 결국 골을 성공시켰다. 광주의 입장에서는 더 이상 좋을 수 없을 만큼 환상적인 골이었지만, 강원의 입장에서는 골키퍼를 포함한 그 많은 수비수들이 신인 선수 한 명에게 완벽하게 당해버린 치욕적인 골이었다.

  이후, 경기의 무게중심은 사실상 광주로 기울어져 버렸다. 쉴새없이 내린 비와 그라운드 사정 때문에 아무래도 양 팀 선수들의 체력적 부담이 큰 상황에서 명장 최만희 감독은 주앙 파울로와 안동혁을 차례로 투입했다. 상대팀의 체력적 한계를 집요하게 공략하려는 생각이었다. 엄청난 스피드와 개인기를 앞세운 두 선수가 투입되자 강원의 수비수들은 맥을 못췄다. 주앙 파울로와 안동혁, 그리고 박기동이 사방을 휘젓고 다니는데 관중석에서 이를 지켜보는 필자마저 머리가 어질어질한 느낌이었다. 아마 비가 오지 않는 맑은 날씨였다면 광주는 최소한 5:0의 대승을 거두었을 것이다.

  이 날 광주 경기장의 N석과 E석 사이의 사각지대는 다른 부분에 비해서 굉장히 물이 많이 고여 있었다. 선수들이 공을 차는지 물을 차는지 혼란스러울 정도로 그 정도가 심했다. 자연히 드리블을 시도해도 공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아서 속도를 내기 힘들었다. 강원과 광주의 전·후반 진영이 반대가 되어 주앙 파울로와 안동혁이 반대 방향으로 공격을 했더라면 아마 더 많은 골이 터지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후반 그라운드 사정은 광주에게 훨씬 더 불리했다. 하지만 그러한 최악의 환경에서도 광주는 시종일관 강원에게 엄청난 공격력을 선보였다. 비만 아니었다면, 조금만 더 그라운드 사정이 나았더라면, 주앙 파울로의 헛발질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고, 우리 선수들의 슈팅도 훨씬 더 정확하고 강했을텐데 그 점이 굉장히 아쉽다. 한 숟가락 더 떠서, 이 날 날씨가 화창해서 광주가 강원에게 대승을 거뒀더라면 시즌 초반 전북에게 1:6의 대패를 당해서 엄청난 손해를 보고 있는 골득실 역시 상당부분 만회가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튼 이 모든 것들이 비 때문에 날아가 버렸다. 다시 생각해도 너무나 아쉽다.

 

 

  하지만 비 덕분에 우리 선수들의 투혼은 훨씬 더 빛나보였다. 특히 수비진들의 투혼이 더욱 더 빛나보였는데, 그 중에서도 유종현의 활약이 대단했다. 항상 그렇지만 유종현은 큰 키를 이용한 공중볼 장악력이 좋은 선수다.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최소한 K리그 내에서 헤딩과 몸싸움으로 유종현과 경합하여 이길 수 있는 선수는 거의 없는 것 같다. 이 날 역시 유종현은 제공권을 완벽하게 장악하며 강원이 공격할 수 있는 여러 차례의 시도를 수포로 돌아가게 만들어버렸다. 또한 시종일관 몸을 사리지 않고 뛰어다닌 덕분에 후반 막판에는 근육 경련이 일어나기도 했다. 쥐가 날 정도로 뛰어다녔으니 열심히 뛰었느니 안 뛰었느니 하는 이야기는 굳이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참고로 이번 라운드 베스트 일레븐에 광주 선수로는 이 날 경기의 MOM으로 선정된 이승기 선수와 함께, ‘유록바’ 유종현 선수가 선정되었다. 프로에 들어와 늦게서야 수비수로 전향하게 된 선수가 데뷔한지 4개월 만에 쟁쟁한 선수들 사이에서 베스트 일레븐에 두 번이나 선정되었다는 것은 이 선수가 앞으로도 무한하게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종현 선수의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또한 이용과 정우인의 활약도 대단했다. 이들 역시 끈끈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상대의 공격을 효율적으로 차단했고, 경기 막판 상대팀의 거친 플레이에도 굴하지 않고 몸을 날리는 투혼을 보여줬다. 특히 이용 선수는 부상을 당할 뻔한 상황까지 연출되었는데, 보는 이의 가슴이 너무나 조마조마했다. 항상 이야기하지만 이용 선수는 대체 불가능한 광주의 주전 센터백이다. 그가 없다면 광주의 수비 조직력은 자연히 무너져 내릴 것이며, 이는 팀 성적과도 직결될 것이다. 그가 부상을 조심해야 할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그의 몸은 개인의 몸이 아니라 팀의 몸이다. 어쨌거나 이러한 투혼을 바탕으로 이용과 정우인 선수 역시 유종현 선수와 함께 상대 공격을 효율적으로 차단시켜주었다.

  전체적으로 비만 아니었더라면 5:0 이상의 득점도 가능한 경기였고, 경기내용으로도 광주가 강원을 완벽하게 압도해버린 경기였다. 컵대회에서 0:5로 대패했던 것을 보기 좋게 똑같이 돌려줄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만, 결과적으로 날씨 때문에 실패했다. 하지만 광주로서는 나름 기분 좋은 승리였다. 또한, 골득실에서도 광주는 이제 -3점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팀 순위는 11위로 올랐다. 나쁘지 않은 결과다.

 

 

  다음 경기는 압도적인 전력으로 현재 리그 선수들 달리고 있는 전북이다. 전북은 가장 만나기 싫은 팀인 동시에, 만나서 가장 크게 설욕해야 할 팀이다. 우리 선수들과 팬들은 1:6의 전북원정 대패를 잊지 않고 있다. 이번 경기는 광주의 홈에서 열린다.

  필자는 올 시즌 가장 기분 나빴던 경기로 전북과의 경기에서 1:6으로 패배한 경기와 강원과의 경기에서 0:5로 패한 경기를 꼽고 싶다. 강원에게 0:5로 패배한 경기는 이미 물 건너간 컵대회이고, 그 경기 이후로 광주는 리그에서 강원을 두 번 만나 두 번 모두 승리를 거두며 승점 6점을 획득했다. 결과적으로 강원보다는 광주에게 이득이 되었다. 이제 전북의 차례다. 전북에게 1:6으로 패배한 것 때문에 광주는 골득실에서 엄청난 손해를 보고있다.

  하지만 광주에게 결과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필자가 앞의 두 경기를 가장 기분 나쁜 경기로 골랐던 것은 점수도 점수지만 경기를 포기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 경기였기 때문이다. 그나마 강원전은 후반에만 5점을 실점했고, 장거리 원정길에 추운날씨, 우리 신인 선수들에게 생소한 야간경기였다.

  그러나 전북전은 장거리 원정도 아니었고, 날씨도 화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주는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핑계거리는 없다. 객관적인 실력에서 완벽하게 밀렸고, 우리 선수들의 정신력도 전북 선수들에 비해 확실히 떨어졌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그 날 경기에서 굉장히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던 박희성 선수만 해도 요즘 들어 180도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나머지 선수들 역시 괄목상대해야 할 선수로 변신했다. 과거의 광주와 현재의 광주는 전혀 다른 팀이 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때의 대패를 설욕해야 한다는 선수들의 마음가짐이 남다를 것이다.

  승리를 해주면 좋겠지만, 팬들은 승리보다 최선을 다하는 우리 선수들의 모습을 원한다. 우리 선수들이 항상 자신들의 뒤에 걸려있는 걸개를 보며 나아갔으면 한다. ‘심장이 뛰는 한 광주답게!’ 부디 이번 주 토요일 전북 전에서 우리 선수들이 광주다운 모습을 보여주며 후회없는 한 판을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광주FC 서포터 정시내(사진), 광주FC 명예기자 박양태(글)-

 


평점 및 경기기록 (출처 : 한국프로축구연맹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