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팬들 사이에서는 언제부턴가 출처를 알 수 없는 괴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대략 작년 시즌부터가 아닌가 싶다. 그 괴소문은 바로 ‘삼동현이 한 라운드에서 동시에 골을 넣으면 지구가 멸망한다’이다. 이 무시무시한 괴소문의 주인공인 ‘삼동현’은 과연 누구일까? 그 ‘삼동현’은 부산에서 뛰고있는 양동현, 강원에서 뛰고있는 서동현, 상주에서 뛰고있는 김동현을 지칭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겉으로 드러나듯이 이름이 같다는 점과 포지션이 공격수라는 점, 그리고 어느 정도의 실력이 되는 선수이지만 약속이나 하듯이 비슷한 시기에 부진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그나마 부산의 양동현 선수는 최근 부진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필자가 다루고자 하는 것은 ‘삼동현이 한 라운드에서 동시에 골을 넣으면 지구가 멸망한다’가 아니라, 우리팀에 있는 ‘삼성민’ 선수이다. 팀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다면 모두들 눈치챘겠지만, 우리팀에는 ‘성민’이라는 이름을 가진 선수가 세 명이나 있다. 하지만 삼동현과 달리 셋 다 성까지 동일하다. 즉, ‘김성민’이라는 이름을 가진 선수가 세 명이나 있다. 게다가 ‘삼성민’ 선수는 홈페이지상 포지션이 모두 공격수로 동일하다. 참 재미있는 경우다.
필자는 올 시즌 전에 다른 팀 서포터 회원들과 ‘삼성민’ 선수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눈 경험이 있다. 우리 팀 선수들의 대부분이 신인 선수라서 몇몇 선수를 빼고는 별다른 정보가 없어서 이야기를 나눌만한 것이 없었지만, 누구와 이야기하든 ‘삼성민’에 관한 이야기는 항상 빠지지 않았다. 그만큼 다른 팀 팬의 입장에서도 ‘삼성민’의 존재는 흥미로움 그 자체였다. 그러나 각각의 팬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항상 자기 팀을 치켜세우며 ‘삼성민’이 한 경기에서 동시에 골을 넣으면 우주가 멸망할 것이다’라는 악담을 잊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악담을 했던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 만한 일이 발생했다. 그게 바로 어린이 날 상주에서 열린 광주FC와 상주 상무의 컵 대회 4라운드 경기다. 두 팀 모두 컵대회 3전 3패라는 최악의 성적을 거두고 있는 상태라서 아무래도 컵 대회는 리그경기에 비해서 전력을 다하지는 않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광주입장에서는 나름대로 2연승을 거두고 있는 중인데, 혹시나 이 경기로 인해서 상승세에 타격을 받지 않을까 걱정되는 경기이기도 했다. 솔직히 필자는 전북원정에서 1:6으로 졌던 경험을 생각하며, 그 때보다만 나은 경기를 했으면 하고 바랐다. 아무래도 프로 첫 경기를 뛰는 선수들이 많을 것이므로 그만큼 어려운 경기가 되리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주는 아직 홈에서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팀이었다.
오히려 이 경기에서 팬들을 기대하게 만들었던 것은 결과가 아닌 우리선수들의 뛰는 모습이었다. 우리 팀은 주전 선수와 비주전 선수(이런 구분조차 의미가 없을 정도로)간의 실력차이가 거의 없다고 봐야함에도 불구하고 경기에 뛰지 못한 선수가 많아서 그들을 보고 싶어하는 팬들이 많았다. 그리고 이 경기에서야 그 선수들이 대거 투입된다는 소식이 있어서, 그 선수들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우리 팀 대부분의 선수들이 ‘천재’라고 인정하는 김홍일 선수와 우리 팀에서 가장 빠른 발을 갖고 있다는 조우진 선수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다. 덧붙여서 괜찮은 실력을 갖고 있는데 생각보다 출전시간이 짧은 유동민 선수에 대한 기대감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은 경기 결과에 대해 포기해버린 필자의 예감을 보기 좋게 깨버렸다. 그리고 그 중심에 두 명의 ‘성민’ 선수가 있었다. 우리팀의 첫 골은 16번 김성민 선수가, 마지막 역전 골은 25번 김성민 선수가 넣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한 선수의 멀티골이 아닌 동명이인의 선수가 한 경기에서 동시에 골을 넣은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정말로 광주가 역사를 쓰고 있는 팀인 것은 확실한 것 같다. 물론 환상적인 크로스를 올려준 조우진 선수와 그것을 그림같은 헤딩으로 받아 넣은 유동민 선수의 두 번째 골 역시 대단했다. 올 시즌 리그 개막전과 비슷한 패턴으로 전개된 이 날 경기는, 결국 후반 추가시간 25번 김성민 선수의 역전골로 광주의 승리가 확정되며 극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사실 이날 경기 초반 우리 수비진은 약간 불안한 모습을 보이며 상대에게 많은 찬스를 허용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선수들은 놀라운 적응력을 보이며 나름대로의 플레이를 하기 시작했다. 정말 누구하나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모두가 하나 된 그러한 경기였다. 이날 경기가 방송되지 않았다는 것이 너무나 아쉬웠을 정도로 우리 선수들은 열심히 싸웠다. 주전 선수들이 이 경기를 봤으면 긴장 좀 하게 되었을 텐데, 그렇지 못해서 못내 아쉽다.
임하람 선수의 수비 모습
이날은 광주의 수비수들이 여럿 바뀌어서 새로운 얼굴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우선 지난 부산과의 원정 컵 대회 때 인상적인 플레이를 보여주었던 임하람 선수가 이날 풀타임 출전하며 철벽 방어를 보여줬다. 그는 팀 내에서 막내이지만 항상 막내답지 않은 다부진 체격으로 상대 선수들을 압도한다. 이 날 경기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꾸준히 경기에 출전할 수 있다면 앞으로도 급성장 할 수 있는 선수라고 본다.
노행석, 고은성 선수의 철벽 수비
다음은 고은성 선수와 노행석 선수이다. 전남 영광 출신의 노행석 선수와 제주도 출신의 고은성 선수도 이 날 경기에서 몸을 사리지 않는 파워풀한 수비를 보여주었다. 상대 공격수들은 골을 넣기 위해 수차례 문전쇄도를 했지만 두 선수의 슬라이딩 태클에 번번이 슈팅 찬스를 잡지 못했다. 두 선수 중 한 선수를 돌파하면 금세 다른 선수가 백업을 하며 막아줬다. 진짜 이 두 선수는 조를 짜서 연습한 선수처럼 너무나 손발이 척척 잘 맞았다. 저 두 선수가 과연 오늘 프로 데뷔전을 갖는 선수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솔직히 바로 주전으로 투입해도 충분히 통할 선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선수의 투지는 정말도 너무나 대단했다. 비록 이 경기에서 두 골을 실점했지만, 한 골은 프리킥 골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우리 수비진들 충분히 자기 몫 이상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주의 지단' 임선영 선수
이날 경기에서 중원을 책임지며 활발한 볼 배급을 해준 선수는 바로 임선영 선수였다. 지네딘 지단을 가장 존경한다는 임선영 선수. 최소한 이 날 경기에서는 그가 ‘광주의 지단’이었다. 그의 볼 배급 덕분에 우리 공격진은 많은 도움을 받았다. 검게 탄 얼굴에 짧은 머리를 한 상무 선수들 사이에서 예쁘장한 선수가 공을 찬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눈에 띄는데 실력마저 튀어버리니 솔직히 눈에 안 띌 수가 없더라.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경기의 MOM으로 임선영 선수를 꼽고 싶다.
우리 선수들 중에서 가장 발이 빠르다는 조우진 선수
이날 선발 출장할 것으로 예상했던 조우진 선수와 유동민 선수는 후반 교체 선수로 들어왔다. 그런데 상대팀에 대한 예의도 없이 이 선수들은 들어오자마자 합작하여 그림 같은 골을 성공시켰다. 빠른 발을 이용하여 골문 오른쪽 방면으로 침투한 조우진 선수는 멋진 크로스를 올렸고, 유동민 선수는 정확한 헤딩으로 골문을 열어버렸다. 결국 16번 김성민 선수의 골과 상대팀 김동현 선수의 골로 1:1이 되어버린 경기는 다시 2:1로 광주쪽으로 기울게 되었다. 조우진 선수의 최대 장점인 빠른 발과 그에 이은 크로스, 그리고 유동민 선수의 최대 장점인 포스트 플레이가 완벽하게 어우러진, 그야말로 짜여진 각본에 의해 이루어진 골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주의 차례였다. 유동민, 조우진 선수보다 몇 분 먼저 들어온 김정우 선수는 역시 국가대표의 힘을 보여주며 멋진 헤딩골을 넣어버렸다. 그 골의 어시스트는 이 경기 상주의 첫 골을 프리킥으로 장식한 ‘삼동현’의 한 명인 김동현 선수였다. '삼동현'이 동시에 활약해서 지구가 멸망할까봐 필자는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골을 넣고 뛰어오는 선수들과 주장 역할을 제대로 수행한 성경모 선수
이제 2:2의 상황! 명장 최만희 감독은 25번 김성민 선수를 투입하며 승부수를 띄웠고, 결국 후반 추가시간에 그 25번 김성민 선수가 골을 넣어주며 3:2의 멋진 역전승을 일구어냈다. 마지막 골을 넣고 골대뒤로 넘어오는 김성민 선수와 그를 축하해주러 오던 임선영 선수, 박현 선수, 유동민 선수의 모습은 정말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져버린 듯한 그들의 모습에 상주까지 먼 원정을 떠났던 광주 팬들은 큰 감동을 받았다. 홀로 골대를 지키며 주장완장을 차고 경기를 조율했던 성경모 선수의 모습 역시 밝게 빛났다. 너무나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이날 경기에서 명장 최만희 감독의 선택은 모두 적중했다. 조우진 선수와 유동민 선수를 교체하자마자 5분도 채 되지 않아서 두명의 합작품인 두 번째 골이 나왔고, 경기 종료를 몇 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넣은 25번 김성민 선수 역시 결승골을 성공시켰다. 물론 경기 초반 기선을 확실하게 제압해버린 김홍일 선수의 어시스트와 16번 김성민 선수의 골 역시 압권이었다. 특히 16번 김성민 선수는 원래 포지션인 공격수가 아닌 수비수로 출전해서 눈길을 끌었다. 앞으로도 그 포지션으로 출전하게 될지 아니면 원래 포지션으로 돌아갈지 지켜봐야겠지만, 충분히 수비수로도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였다. 참고로 이날 경기의 MOM로는 첫 골을 넣은 16번 김성민 선수가 선정되었다.
이날 상주의 공식 관중은 8972명이었다. 그런데 관중 수와 관계없이 상주의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 시골 경기장에 할아버지부터 어린아이까지 삼삼오오 경기장에 몰려드는 광경도 인상적이었고, 대도시와 다르게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자전거타고 줄줄이 경기장에 몰려오는 모습도 신기했다. 말 그대로 축구경기가 있는 날은 마을 잔칫날이었다. 경기장 주위의 전봇대에는 줄줄이 상무 선수들의 얼굴이 담긴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다. 상주의 유니폼을 입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보였다. 경기장에 들어오니 시골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을만큼 자리가 가득찼다. 생각보다 더운 날이었지만 날씨는 문제되지 않았다. 어렸을 때 무등경기장에 가서 야구를 보던 그 때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오버랩되었다. 반가웠다. 상주 시민들은 경기에 지고도 화를 내거나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양팀 선수들에게 아낌없는 격려와 박수를 보냈다. 그들은 말 그대로 축구 자체를 즐기는 것 같았다. 상무는 지극히 기형적인 팀이지만 그러한 열기가 꾸준히 유지된다면 상주에도 충분히 정식 프로팀이 생길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을 보았다. 상대팀의 팬이 보아도 경기 결과와 관계없이 기분좋은 모습이었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광주는 컵대회 포함 3연승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너무 배부른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걱정이 된다. 쓸데없이 팬들의 눈만 높아져서 앞으로의 경기에서 우리 팀이 비기기라도 하면 욕이나 먹지 않을는지 걱정된다. 부디 그런 일은 없었으면 한다. 우리는 신생팀이고 광주 선수들은 대부분이 신인이다. 경기에 이기면 이기는 대로, 지면 지는 대로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주고 격려해주자. 이기면 어떻고 지면 어떠한가? 우리 선수들은 이미 목적을 달성하고 그 위를 향해 달려가는 중이다. 주전 선수들도 달성하지 못한 원정 첫 승을 비주전 선수들이, 그것도 홈 무패행진을 이어가던 상주를 상대로 거둔 이날 경기. 절대 개막전과 비교해도 손색없었던 이 경기는 앞으로도 한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우리 선수들의 앞으로의 모습이 더욱 더 기대된다.
그나저나 다른팀 팬들이 호언 장담하던 우주 멸망이 걱정된다. 첫 경기부터 '삼성민'중 두 명의 성민이 골을 넣어버렸으니 최소한 '삼동현'의 지구멸망보다는 훨씬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우주멸망을 걱정해야 하는가? 다른팀 팬들은 모르지만, 최소한 광주팬의 입장에서 그러한 우주멸망은 나쁘지 않을 듯하다. 앞으로도 '삼성민'의 더 나은 활약을 기대해본다.
-광주FC 서포터 정시내(사진), 광주FC 명예기자 박양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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